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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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서정
김왕식
늦가을의 아침, 무서리가 내려앉은 들판은 쌀쌀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가볍게 내린 서리는 들녘을 희끗하게 물들이고, 그 위에 노랗게 피어난 들국화는 그 속에서 마치 작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늦가을의 들판은 그리움과 묘한 정취로 가득하다. 저녁이 되면, 황혼이 온 세상을 따스한 주황빛으로 물들인다. 이 시간대의 빛은, 마치 추억의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중년의 친구들이 오랜만에 다시 모였다.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들은 이제 나이를 먹고,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살아왔지만, 이 가을날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옛정을 나누고 있다. 모닥불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꽃을 피우고, 그 소리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불빛은 어둠을 밀어내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온정은 찬 기운마저 잊게 만든다.
주름진 손들이 이빨 빠진 사발을 들고, 서로에게 탁주 한 잔을 권한다. 시간이 흐른 흔적이 얼굴과 손에 깊이 새겨져 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청년 시절의 순수함과 우정이 자리하고 있다. 한 잔을 마주할 때마다,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힘겨웠던 시간들, 함께 웃고 울었던 추억들이 탁주의 맛과 함께 되살아난다. 세월은 그들을 변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친구 간의 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우정을 나누며 쌀쌀한 늦가을 저녁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오래된 책을 다시 펼치는 것과 같다.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미소에는 깊은 애정과 신뢰가 묻어 있다. 모닥불의 온기가 그들의 몸을 덥혀 주는 것처럼, 옛 친구와 나누는 정은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탁주의 쓴맛 뒤에 숨겨진 감칠맛처럼, 인생 역시 때로는 쓸쓸함과 고단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쓴맛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이들이 오랜만에 마주 앉아 나누는 술잔 속에는 그들의 삶의 무게가 녹아 있고, 그 무게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깊은 감사와 행복이 담겨 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은 청년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세월은 그들의 외모를 변화시켰지만, 마음만큼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의 모습은, 세상을 향한 따뜻한 미소를 짓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처럼 보인다.
주름이 깊어졌고, 삶의 고난이 그들을 휘감았지만, 오늘 밤만큼은 모든 것이 다 잊힌 듯하다. 지금 이 순간은, 그들이 다시금 청춘의 한가운데로 돌아온 시간이다.
모닥불의 불빛은 점점 더 타오르며 그들을 감싼다.
쌀쌀한 기운을 녹여주는 것은 단순한 불의 온기가 아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우정과 온정이 그들의 밤을 따뜻하게 밝히고 있다. 가을 저녁, 그들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의 삶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이 늦가을, 무서리 내린 들녘에 다시 피어난 들국화처럼, 이들의 우정도 세월 속에서 더욱 깊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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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모닥불
무서리가 내려앉은 들녘 위에
들국화가 노랗게 피어오른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빛나는 꽃처럼
우리의 마음은 따뜻하다
오랜 친구들이 모인 저녁
황혼이 물든 하늘 아래
모닥불 타오르는 불빛 앞에서
주름진 손으로 사발을 들고,
탁주 한 잔에 옛정을 나눈다
세월은 우리를 변하게 했지만
그 우정은 여전히 그 자리
주름 사이에 스민 웃음과 이야기
그리운 시간들이 술잔에 넘친다
모닥불의 온기가 차가운 밤을 녹이고
우리는 함께 청년으로 돌아간다
쓴맛 뒤의 감칠맛 같은 인생,
함께 나누는 그 순간들 속에서
우리의 가을은 외롭지 않다
이 밤, 우리의 우정은 꺼지지 않는 불씨.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