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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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로 목사님
청람 김왕식
대형 건물의 한가운데 자리한 기둥은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공간의 중심에 위치해 모든 하중을 지탱하며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강의나 공연이 있을 때, 이 기둥은 그 의미와 달리 불편함을 유발한다. 시야를 가로막는 이 거대한 기둥 때문에 좌석을 선택할 때 관객들은 기둥이 없는 자리를 선호하게 되고, 누구나 앞줄이나 기둥에 방해되지 않는 자리에 앉으려 애쓴다. 그러나 모든 이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없기에 결국 몇몇은 어쩔 수 없이 기둥 뒤에서 불편하게 앉게 된다.
최근 한 대형교회의 원로 목회자는 이 기둥과 같은 위치에서, 나아가 사회와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외부 목회자가 초청되어 설교를 할 때마다, 그 목회자는 가장 먼저 기둥 뒤, 즉 가장 불편한 자리로 향해 자리를 잡는다. 이는 겸손과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주는 한편, 다른 교인들이 조금 더 나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행동이다. 그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자신의 자리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으로써 자리를 양보하고, 그를 통해 교인들에게 ‘겸손한 섬김’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이 목회자의 행동은 그저 자리를 양보한 단순한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겸양을 넘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와 공동체 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이 마음가짐은 마치 예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것과 같다. 신앙의 가르침이 단지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의 울림은 더욱 강력하다. 이 행동이 큰 울림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동을 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자신의 이익과 편안함을 내려놓고, 이 목회자처럼 기둥 뒤에 서기를 선택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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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 그 교회에 참석하는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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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건물 강단에서 기둥이 시야를 가릴 때, 그 자리 뒤에 앉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위치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는 매 주일 수많은 성도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고, 기둥 뒤 좌석은 마지막까지도 비어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기둥 뒤 자리에 우리 원로 목사님이 앉으시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뭉클해집니다. 처음에는 왜 저 자리에 앉으셨을까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목사님의 솔선수범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부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원로 목사님께서는 누구보다 먼저 가장 불편한 자리로 향하십니다. 성도 한 사람이라도 더 편안한 자리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시는 목사님의 그 모습은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자,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말씀을 전하시지는 않지만, 목사님께서 보여주시는 이 한 가지 행동 속에 담긴 진정한 겸손과 섬김의 의미는 매주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가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목사님을 떠올리면, 부끄럽지만 나 자신이 얼마나 편한 자리와 더 나은 위치를 고집해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목사님의 모습은 단순히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신앙 속에서 실천해야 할 진리,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삶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공동체가 지녀야 할 믿음의 자세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원로 목사님께서는 진정으로 ‘낮아짐’을 실천하는 분이십니다.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가르침이 되는지, 어쩌면 목사님 자신은 아시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이 그 모습을 통해 마음속 깊은 존경과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본을 보여주고 계신 목사님을 보며, 앞으로 저 역시 그 본을 따라 교회와 세상에서 ‘기둥 뒤에 앉는’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목사님의 이러한 섬김은 매주 우리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모든 성도들이 그 뜻을 깊이 헤아려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합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