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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9. 2024

할머니의 속바지 ㅡ 유숙희 시인

청람 김왕식





             할머니의 속바지


                       




                               시인  유숙희






바늘귀에 분홍색

실을 뀄다


고운 색 바지를

고치러 오신 할머니

얼굴이 재봉틀 위해

어른거리고


낡고 늘어진 허리

고무줄

할머니 주름살만큼이나

오래된 분홍 속바지

할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生

다 할 때까지

입게 해 달라 신다


할머니께 이 고운

속바지 직접 만들어

드리고 먼저 떠난

딸 그리워 이 바지만

고집하신다 는,


따님 마음으로

정성 다 해 분홍

천을 잇대어

완성하고 보니

새 옷처럼 깔끔타


할머니는

딸내움 분홍 속바질

오래 입으시고

장수하시리라

기대어 본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숙희 시인의 시 ‘할머니의 속바지’는 사라져 가는 옛 삶의 모습과 함께, 그리움이 깃든 물건에 대한 정성 어린 마음을 담고 있다.

시인은 할머니의 오래된 속바지 하나를 통해 한 사람의 생애를 온전히 기억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유숙희 시인은 평생을 고된 삶 속에서 견뎌온 이들의 소중함과 그러한 일상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인으로, 그의 시에서 엿보이는 따뜻한 감정과 회고적 태도는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시 첫 행에서 "바늘귀에 분홍색 실을 뀄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행위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고유한 색채감과 미묘한 정서가 함축되어 있다. 분홍색 실은 딸과 할머니의 연결고리를 암시하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한 생동감을 전달한다. 이와 같은 색채의 선택은 단순한 감각적 표현이 아닌 삶에 대한 따뜻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두 번째 행과 세 번째 행에서 나타나는 "고운 색 바지를 고치러 오신 할머니 / 얼굴이 재봉틀 위해 어른거리고"는 할머니의 모습이 바느질을 통해 재현되는 장면을 그림처럼 담아내며, 재봉틀 위에 드리운 할머니의 모습은 그리움과 애정이 동시에 깃든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때 재봉틀의 기계적인 움직임은 할머니의 평생 동안 반복되었던 일상과 삶의 흔적을 상징하는 듯하다.


중반부에 이르러, 할머니의 "낡고 늘어진 허리 고무줄"과 "오래된 분홍 속바지"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화한 육체적, 물질적 요소를 대변한다. 이는 삶의 무게와 고달픔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러한 낡음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애정을 표현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특히, "생 다 할 때까지 입게 해 달라 신다"는 구절에서는 할머니가 속바지를 통해 여전히 살아 있는 딸을 추억하며, 그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의 후반부에서는 할머니의 딸을 향한 그리움이 '딸내움 분홍 속바지'에 집중되면서, 그 바지가 마치 딸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연에서는 "장수하시리라 기대어 본다"는 표현을 통해, 딸의 기억을 간직한 채 장수하시기를 바라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요컨대, 이 시는  삶 속에서 오래된 사물이 지닌 정서적 가치와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독자로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인은 일상에서 잊힌 사물의 소중함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전하며, 우리 주변에 숨겨진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유숙희 시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님의 ‘할머니의 속바지’를 읽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시를 통해 단순한 일상의 물건, 할머니의 오래된 속바지가 한 사람의 생애를 기억하게 하고, 세월 속에 스며든 그리움과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 행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는 장면을 떠올리며, 저 또한 저만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 분홍색 실로 속바지를 고쳐 입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주신 덕분에, 오래된 물건에도 누군가의 손길과 마음이 담겨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그 속에 스며 있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시 속에서 "생 다 할 때까지 입게 해 달라 신다"라는 구절에서는 할머니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 소중한 물건과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마치 딸의 흔적을 속바지에 깃든 채로 함께하며, 그것을 통해 소중한 이와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낡고 허물어진 물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과 기억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시의 마지막에서 할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며 소원을 담은 시인님의 따뜻한 마음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깃든 물건을 오래 간직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마치 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였고, 소중한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소망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통해 할머니께서 단순히 시인의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분의 소중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속바지’는 단순히 그리움의 시가 아니라, 세월을 거스르며 전해져 내려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시를 통해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과,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숨겨진 소중한 감정들과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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