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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9. 2024

지하철을 타자 ㅡ 시인 정순영

청람 김왕식







                   지하철을 타자



                                 시인 정 순 영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엔
파렴치와 몰상식이 눈치를 보는 교통약자석이 있다
비어있는 분홍색 의자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사람다운 사람들의 마음은 산을 옮기고
하늘빛 윤슬이 반짝거리는 강을 흐르게 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엔
훈훈한 단맛의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워 목이 마를 때는 지하철을 타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순영 시인은 하동에서 태어나 자연과 사람의 감성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는 시의 언어를 통하여 인간 본질에 다가가며, 시인의 책임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철학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부산시인협회 회장과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과 국가 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와 같은 시집을 통해 인간적 교감과 사회적 통찰을 시어로 구현해 왔다.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의 작품 세계는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이러한 배경은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에 담긴 인간애와 진정성으로 이어진다. 특히 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그의 태도는 ‘지하철을 타자’와 같은 시에서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그의 인간 중심적 가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 시의 첫 행,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엔”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간결한 표현으로 전해주며,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체로서의 지하철을 떠오르게 한다. 이 공간은 익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장소로, 혼잡함 속에서도 사회적 연대와 인간적 정이 깃들어 있다. 시인은 이 혼잡함에서 오히려 사람다운 사람, 즉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려 한다.

“파렴치와 몰상식이 눈치를 보는 교통약자석이 있다”는 문장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경계와 한계를 지적한다. 특히, 약자를 위한 공간이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이러한 공간을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을 되짚는다. 시인은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배려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비어있는 분홍색 의자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사람다운 사람들의 마음은 산을 옮기고”에서 ‘분홍색 의자’는 교통약자를 위한 자리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의미한다. 이 의자에서 피어나는 마음은 공공의식을 상징하며, 이러한 마음이 모여 ‘산을 옮기고’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작은 마음들이 모여 이룬 사회적 변화와 온정을 시인은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하늘빛 윤슬이 반짝거리는 강을 흐르게 한다”는 인간적 온정과 배려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시인의 철학적 관점을 담고 있다. 윤슬이 반짝이는 강물은 지하철 속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마음들의 흐름을 상징하며, 이러한 마음이 세상에 펼쳐져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이루어낸다. 지하철에서 시작된 인간적 배려가 결국 더 큰 자연의 섭리를 닮은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반복되는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엔”은 시적 리듬을 더하며, 일상적 공간에서의 연대와 소통을 부각한다. 지하철이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장으로 변모한다. “훈훈한 단맛의 사람 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은 인간적 온기와 연대감을 상징하며,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공간에서 시인은 인간다운 향기를 상기하게 한다.

마지막 행,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워 목이 마를 때는 지하철을 타자”는 지하철이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인류애를 회복할 수 있는 장소임을 암시한다. 시인은 목마른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가치를 지닌 이들을 찾고자 할 때 지하철을 통해 사람다움을 발견하자고 권유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메마른 인간관계 속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소통의 장소로서 지하철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현대 도시 생활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사회적 공감을 담고 있다.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묘사는 단순한 교통 공간이 아닌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인간애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된다.
시인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간다운 마음이 피어오르기를 바라는 바람을 서정적으로 그려내었다.






정순영시인 약력

1974년 <풀과 별> 추천완료.
시집; “시는 꽃인가”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 “조선 징소리” “사랑” 외 7권. 부산시인협회 회장,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장, 국제 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등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세종문화예술대상, 한국문예대상, 외 다수 수상. <4인 시> <셋> 동인.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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