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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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꿰 듯
시인 文希 한연희
굵은 바늘이 사뭇 깊습니다
물배 채운 산이 터지고
강이 주변을 다 삼켰습니다
잠시 그치면 해맑은
자연은 용사입니다
마음자락 펴놓고 애통하다
백색소음 자장가에 잠이 듭니다
오다 그치고 그치다 다시 오고
제풀에 지칠 때까지 자늑자늑 삽니다
어림잡아 바늘귀에 실 꿰 듯
실끝에 침 묻혀 귀에 집중합니다
당신의 터진 마음을
꿰매 드리고 싶어 실을 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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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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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시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의 시 속에 담긴 사유의 깊이와 그가 마주한 세상의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한연희는 생명의 섬세함과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며, 이를 통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특히 시에서 반복되는 비와 강, 산은 그가 마주한 자연과 삶의 경로를 반영하며,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 ‘실 꿰 듯’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상처를 꿰매려는 시인의 의지를 담고 있다.
첫 구절, "굵은 바늘이 사뭇 깊습니다"는 고통의 시작을 암시한다. 굵은 바늘은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그 깊은 상처와의 연관성에서 시인은 아픔의 깊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상처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이를 꿰매려는 시인의 의지를 반영한다.
"물배 채운 산이 터지고 / 강이 주변을 다 삼켰습니다"에서는 자연이 가진 폭발적 힘과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묘사한다. 물배를 가득 채운 산의 모습은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이자, 인간의 감정이 억누르다 터질 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이다.
"잠시 그치면 해맑은 / 자연은 용사입니다"에서 시인은 잠깐의 고요를 용사로 비유한다. 고요는 전쟁 후의 평화와도 같으며,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생명력의 회복을 의미한다. 자연의 용사적 성격은 시인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모습과 상통한다.
"마음자락 펴놓고 애통하다 / 백색소음 자장가에 잠이 듭니다"에서는 슬픔과 휴식이 교차한다. 마음의 자락을 펼쳐 슬픔을 담는 행위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이며, 백색소음 자장가에서 삶의 피로가 느껴진다. 이는 모든 고통을 잠시 잊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오다 그치고 그치다 다시 오고 / 제풀에 지칠 때까지 자늑자늑 삽니다"에서는 삶의 순환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인다. 고통과 평온의 반복은 인생의 리듬을 나타내며, 시인이 이를 이해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어림잡아 바늘귀에 실 꿰 듯 / 실끝에 침 묻혀 귀에 집중합니다"는 섬세한 집중과 인내의 과정을 담고 있다.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은 고통을 치유하려는 상징적 행위로, 집중과 인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시인은 이 과정에서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당신의 터진 마음을 / 꿰매 드리고 싶어 실을 뀁니다"는 시의 절정으로, 시인이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진심을 담고 있다.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타인을 위한 진정한 위로와 치유의 의미를 전하며, 자신의 역할을 그 바늘에 비유한다.
요컨대, ‘실 꿰 듯’은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삶의 순환 속에서 생겨나는 상처들을 시인의 시선으로 위로하는 시이다. 시인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바늘과 실을 선택한다. 각 행에서 드러나는 고통의 묘사는 생생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는 깊은 울림을 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