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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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쉬어가는, 그곳에서
하늘 아래 첫 동네는 오늘도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일렁이는 바람 소리만이 들리는 이곳은, 어쩌다 구름이 내려와 안식하듯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한적한 마을이다.
논밭에 서린 초록이 고요히 숨 쉬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그 땅은 가난한 농부들의 터전이었고, 한 뼘 한 뼘마다 농기구를 들고 일어섰던 아버지의 굳은 손, 돌담 틈새마다 땀을 쏟던 어머니의 온기가 서려 있었다. 돌담을 쌓아 올린 한 줄기 희망처럼, 누대에 걸친 농부들의 애환과 꿈이 고스란히 스며 있던 그 마을, 하늘 아래 첫 동네가 내 삶의 시작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나를 붙잡고 말씀하시곤 했다. "너는 책을 놓지 마라. 이 척박한 삶을 벗어날 길은 공부밖에 없다." 아버지의 희망은 그 하나뿐이었다. 땀을 비 오듯 쏟아부으면서도, 그 손에 책과 펜을 쥔 아들을 꿈꾸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그 꿈의 씨앗을 품고 자라길 바라시던 그분의 마음은, 어머니의 눈빛 속에 깃들어 함께 전해지곤 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자리 잡은 그 소망은, 내게 끝내 그 사랑을 외면할 수 없는 힘이 되었다.
시골에서 머무르기엔 내겐 갈망이 컸다. 결국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아직 모래알 같은 청춘의 날들이었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가슴에 안고 나서는 길은 두렵지 않았다.
처음 서울 땅을 밟은 날,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번쩍이는 불빛과 사람들의 소음이 나를 압도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꺾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파하고 찬밥 한 술 뜨자마자 신문 배급소로 달려가
석간신문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두운 골목을 혼자 걸으며 홀로 우는 날이 많았다.
밤이 이슥해서야 비로소 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위해, 그 고된 농사일 속에서도 미소로 견뎌내시던 두 분을 생각하면, 나는 주저앉을 수 없었다. 언젠가 그분들 앞에서 한 가닥 빛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그렇게 쌓인 날들이 이어져 마침내 서울 한복판에서 고등학교 국어 선생이 되었다. 내 입술로 학생들에게 시와 산문을 전하는 순간마다 부모님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느꼈다.
교실 창가에 서서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부모님께 내 마음을 전하는 것만 같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 허전함이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
호강 한 번 못 시켜드린 채, 부모님은 이미 저 먼 별이 되셨다.
그야말로 풍수지탄風樹之歎이다.
하늘의 별로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하늘 아래 첫 동네, 그곳에서 매일 농사일을 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일에 지쳐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아버지, 그리고 말없이 곁을 지키며 내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내어주시던 어머니. 이제 그 시절은 아득히 먼 추억 속에 남아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리움과 미련으로 그 마을을 마음에 품고 산다.
가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그 동네의 모습을 그려본다. 이젠 주름이 패인 돌담과 말라버린 논두렁이 됐을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에선 여전히 푸르름이 서려 있다. 그 마을에서의 나날들이 내 삶의 뿌리가 되어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 마을을, 부모님의 사랑을 잊지 않으려 한다. 부모님께 전하지 못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오늘도 내 가슴속에서 메아리친다.
이제는 그리움 속에서마저 후회와 미안함이 더해진다. 부모님께서 바라셨던 삶을 이루었지만, 정작 그분들께 드릴 수 있었던 시간은 너무 짧았다.
저녁노을에 하늘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내겐 아픈 바람으로 남아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시작된 내 삶의 노정이 그리움과 미련 속에 완성되고 있는 지금, 나는 그 마을을, 부모님의 숨결을 마음속에 깊이 새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