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0. 2024
한강의 '소년이 온다' ㅡ문학평론가 김왕식
한강 작가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제
어제
한강의 소년을 만났다.
생각한 바 있어
몇 줄
적는다
■
한강의 '소년이 온다'
청람 김왕식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역사의 잔혹한 장면을 서정적인 글로 직조해 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통과 소멸, 그리고 잔인한 현실을 드러낸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며, 때로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비명처럼 울려 퍼진다. 잔인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진 소년과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그려낸 이야기는 독자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류애의 단면을 포착하게 한다.
한강의 필체는 객관적인 서술을 통해 비극의 무게를 더한다. 인물들은 감정의 과잉을 자제한 채로 자신만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독자들은 그들의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된다. 여기에 사용된 시적 산문은 광주의 비극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닌, 그 아픔을 응시하게 만들며 인간성의 회복 가능성을 묻는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간의 상실과 연대,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하며,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그러나 그 진실을 직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작품 속 소년의 죽음과 이를 목격하는 인물들의 상처는 글 너머에서 진동하며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비극적 현실에 대한 무거운 서사는 독자에게도 죄책감을 환기시키며,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그리하여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비극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본을 통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한강의 문장은 잔혹함 속에서 빛나는 인간의 위상을 찾으며, 그로 인해 독자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결국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묻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독자의 내면을 꿰뚫는 시적 체험이다.
한 켠,
이 작품이 지닌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감정의 밀도와 인간성 회복에 대한 구체적 전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남는다. 비극을 바라보는 서술이 때로는 너무나 차가워, 연대의 힘이나 삶에 대한 가능성이 희미하게 남겨지는 경우가 있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상실과 연대의 이야기에 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결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은 단순히 고통의 반복을 넘어, 새로운 세대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이 창조한 인물들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서로를 치유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더 깊이 있게 그려진다면, 독자에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받는 구체적인 장면이 더 보강된다면, 이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광주의 역사적 비극이 현재와 연결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실질적인 길을 제시할 것이다. 이는 작품의 감동을 더욱 깊이 새기며, 독자가 개인적 성찰을 넘어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거운 자각을 함께 지니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결국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며, 그 상처 속에서도 인간성 회복을 모색하는 진지한 시도로 나아갈 때, 한층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