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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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옷
시인 이오동
명품은 어느 곳에서든 당당하다
그것은 전장의 뚫을 수 없는 갑옷과 같다
그는 지갑을 뒤적이고 있다
겹겹의 속에 무엇이 있는 진 모르지만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은 불룩한 몸에서
많이도 먹었구나 짐작할 뿐이다
입생로랑의 노랑 잎새는 떨어지고 정지된 카드와 색 바랜 복권 몇 장
차마 버리지 못한 영수증과 고지서들 영양가 없이 토해낸 속이 쭈글쭈글하다 그동안에 해왔던 일과 소중했던 것들이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을까
구석구석 먼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
만물의 시작과 끝에는 먼지가 있는 것일까
탁탁 지갑을 턴다
한때 보물이었다고 반짝반짝 빛을 내며
먼지가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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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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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동 시인은 일상 속 사소한 사물들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작은 것들을 통해 보편적인 진리를 통찰하려는 시인이다. 그의 삶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러한 철학적 성찰은 물질적 소유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의 의미를 찾으려는 그의 시에 잘 반영되어 있다. ‘먼지의 옷’에서는 일상 속 사물이 상징하는 깊은 인생의 무게와 허무를 탐구하며, 현대인의 삶 속 모순된 집착과 그 끝에 남은 허탈감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첫 행 “명품은 어느 곳에서든 당당하다”는 물질적인 가치가 부여된 ‘명품’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묘사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는 삶 속에서 겉모습에 매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은유하며, 현대인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어지는 “그것은 전장의 뚫을 수 없는 갑옷과 같다”는 표현은 명품이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방어막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물질적 소유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모순된 마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지갑을 뒤적이고 있다”라는 행은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동작으로, 물질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낸다.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은 불룩한 몸’은 쓸모없는 소유들로 가득 찬 삶을 비유하며, 물질적 욕망으로 인한 피로와 공허함을 상징한다. 이어지는 ‘많이도 먹었구나 짐작할 뿐이다’는 그동안 쌓아온 소유물들 속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문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입생로랑의 노랑 잎새는 떨어지고 정지된 카드와 색 바랜 복권 몇 장’은 한때 빛나던 물질이 사라지고, 무가치해진 자산과 꿈을 상징한다. 이는 세월 속에서 가치가 퇴색된 소유물들을 통해 인생의 허망함과 현실의 냉혹함을 대조적으로 드러낸다. ‘차마 버리지 못한 영수증과 고지서들’은 필요하지 않지만 놓지 못하는 물질적 집착을 상징하며, 현대인의 감정적 연약함과 과거에 대한 집착을 대변한다.
‘영양가 없이 토해낸 속이 쭈글쭈글하다’는 표현은 빈 껍데기처럼 남은 감정을 드러내며, 쌓아온 소유물들이 아무 의미 없는 껍질로 남는 과정을 함축한다. ‘그동안에 해왔던 일과 소중했던 것들이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을까’라는 문장은 궁극적으로 물질적 성공을 위해 달려온 여정이 헛된 싸움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행에서는 ‘먼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모든 소유와 성취의 끝에는 결국 먼지가 남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먼지라는 존재는 시작과 끝을 상징하며, 모든 물질적 가치가 결국 허망한 것으로 돌아감을 나타낸다.
탁탁 지갑을 털며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먼지로 사라지는 장면은 과거의 집착에서 해방되는 해탈의 순간을 상징하며, 물질적 소유를 넘어선 자유와 평온함을 암시한다.
이오동의 ‘먼지의 옷’은 현대인의 물질적 집착을 돌아보게 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작은 사물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본질적인 삶의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물질적 가치에 얽매여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현실에 대해 성찰을 촉구하며, 삶의 본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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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오동 시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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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인님의 시 ‘먼지의 옷’을 읽고 깊은 감동과 여운이 남아 이렇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시 속에서 저마다의 삶 속에 쌓여가는 무게와 그 끝에 남겨지는 허망함을 섬세하게 표현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시인님의 시어들이 마치 제 일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명품은 어느 곳에서든 당당하다’는 첫 구절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주는 듯했습니다. 소유와 성취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스스로가 어떤 갑옷을 입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물질적 소유를 통해 자존감을 지키려는 나약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영수증과 고지서들, 정지된 카드와 색 바랜 복권’을 보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이 어느새 먼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장면이 우리네 삶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마음 한편이 아릿해졌습니다. 과거의 가치에 얽매여 놓지 못하고 있는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먼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구절에서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결국 먼지가 남는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의미를 잃고, 결국 허망하게 사라지는 모든 물질적 가치가 결국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단순히 물질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 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물질적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찾고, 본질에 충실한 삶을 추구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겉모습에 매달리지 않고, 무게 있는 삶의 가치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귀한 시를 통해 저와 같은 독자가 인생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과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