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순간을 엮어서
시인 백영호 ㆍ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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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순간을 엮어서
시인 백영호
재깍재깍
시침이 초침 낚아채고
분침을 생포하여
하루살이 철창에 가두었다
시간은
점이라는 초침
선이라는 분침 잇고 엮어
면이라는 하루를 열었고
그 하루는
씨 시간줄
날 시간줄로 짜고 엮어
달이 뜨고 열두달 한해되어
연수가 켜켜이 쌓이니
중년이 어느새 백발세월이라
아서라
순간이 시간으로 달리고
연수는 세월이 두드리니
정신아 뼈를 때린다
세월아 앞장서거라
나 백발로 따라 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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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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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은 인생을 살아가며 순간순간 흘러가는 시간을 엮어 한 편의 '삶의 면'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삶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깊이 고찰해왔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순간'과 '시간'의 유기적 연결은 단순히 하루살이와 같은 짧은 순간을 뛰어넘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시인의 삶에서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직조해가는 실마리이며, 그 속에서 젊음의 순간은 점차 세월 속으로 엮여 한 인간의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이 시는 그의 삶을 반영한 철학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인 탐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첫 연에서 "재깍재깍"이라는 시계 소리는 시간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시침이 초침을 낚아채고'는 순간과 시간이 서로 맞물려 진행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이 과정은 '하루살이 철창'에 가둬져 버리는 유한성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생의 덧없음을 암시하면서도, 그 짧은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결국은 인생 전체를 완성하는 역설적 의미를 전달한다.
두 번째 연에서 시간은 '점'이라는 초침, '선'이라는 분침으로, 나아가 '면'이라는 하루로 엮이며 구조화된다. '점'과 '선'이 시간의 연속성을 의미한다면, '면'은 그 연속성을 통해 생성된 하루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구체적 형태를 갖추며, 하루라는 개별 단위로 다가오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세 번째 연은 시간이 하나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달'과 '연수'로 확장되며 나이의 무게를 담아낸다. '중년이 어느새 백발세월'이 되는 과정은 삶의 일순간이 모여 생을 축적하는 과정이자, 우리의 기억 속에 중첩된 시간이란 무게를 느끼게 만든다. 시인의 시어에서 드러나는 단어 선택은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며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네 번째 연에서 "아서라"라는 표현은 중년의 인생에서 느껴지는 체념과 동시에 시간에 대한 포용의 자세를 나타낸다. "정신아 뼈를 때린다"는 시간의 엄중함을 체감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표현으로 읽힌다. 이 표현은 인생의 깊이를 일깨우는 강렬한 감정을 부각하며, 시간의 무게를 수용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마지막 연에서는 세월을 앞장세우고 '나 백발로 따라가리니'라고 하며,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성숙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시인은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시간의 유한성과 순리적인 흐름을 받아들인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자리 잡은 자신의 존재를 담담하게 마주하며, 순간의 무의미함을 초월해 더 큰 인생의 의미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