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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ㅡ시인 이인애

청람 김왕식









거미



시인 이인애




동서남북 네 귀에
바람으로 그물을 엮어
희망의 이름으로 걸렸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 내리면 눈을 맞으며
기다림이 배인 삶

날개도 없이
허공을 떠받치는
고요한 운명

나방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에도
한 없이 흔들리는 몸짓

간절함이 빚어낸 침묵을
시간의 그림자에 드리우며
유한한 전율에 목숨을 걸다

내일은 더 나으리란 기대에
불신을 거두며
온전히 하루를 밀고 나가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인애 시인의 시 <거미>는 인생을 비유하는 시다. 이 시는 단순히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시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철학적 통찰과 인내의 시간을 담고 있다.
시인은 거미의 고요한 기다림과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존재의 아픔과 소망의 이중적 의미를 투영한다. 그물처럼 얽힌 삶 속에서 자신을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치 거미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면서도 끈질기게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과 닮았다. 이인애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인생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묵묵히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 행의 "동서남북 네 귀에"는 삶이 놓인 모든 방향을 암시하며, 다양한 환경과 관계에 둘러싸여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바람으로 그물을 엮어"는 외부의 힘, 즉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로 자신을 지탱해 나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거미가 바람으로 그물을 엮듯, 인간도 수많은 변수와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엮어가는 것이다. "희망의 이름으로 걸렸다"는 그물이 비록 불안정하고 끊어질 위험에 처해 있지만, 희망으로 매달려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와 "눈 내리면 눈을 맞으며"는 시련과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거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미는 자연의 영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운명을 받아들이며 그 자리를 지킨다. 이는 삶의 순간순간을 받아들이며 기다림을 배어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날개도 없이 허공을 떠받치는 고요한 운명"에서는 거미가 날개도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운명처럼 허공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강조된다. 이 구절은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하면서도, 그 약함 속에서도 고요히 자신을 버텨내는 모습이 존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방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에도 한 없이 흔들리는 몸짓"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는 거미의 섬세함과 그로 인해 불안정해 보이지만 끝내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인간도 작은 변화나 문제로 인해 흔들릴 수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균형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간절함이 빚어낸 침묵을 시간의 그림자에 드리우며 유한한 전율에 목숨을 걸다"에서는 거미가 한없이 간절하게 그 자리에 머물며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고독을 감내하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생명 역시 유한하지만,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구절, "내일은 더 나으리란 기대에 불신을 거두며 온전히 하루를 밀고 나가는"은 이 시의 주제를 집약한다. 거미처럼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는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지만, 동시에 그 기대가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면도 있다. 결국, 내일에 대한 불안함을 내려놓고 온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결단이야말로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인생의 자세다.

이 시는 이인애 시인이 거미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삶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탁월한 작품이다. 바람에 의해 그물에 얽히고설키는 거미의 삶 속에는, 인간이 외부의 영향 속에서도 그 자리를 버텨내고자 하는 인내와 희망의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거미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듯, 인간 역시 외부의 크고 작은 변수들 속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 시의 각 행이 담고 있는 의미와 감정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며, 거미의 움직임에서 삶의 복잡하고 고요한 울림을 끌어내는 시인의 문학적 성찰이 돋보인다.

시의 흐름은 고요하면서도 끈질기며, 한편으로는 나약해 보이지만 끝내 자신을 지켜내는 거미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중첩시킨다. 이 시는 삶의 유한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안에서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인애 시인은 거미의 기다림 속에 깃든 운명과 희망을 통해,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는 결단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전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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