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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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
시인 이인애
따따따 따따따
뚜뚜뚜 뚜뚜뚜
도둑이 불어대는
평화의 나발소리
빠각 빠각 빠각
빠각 빠각 빠각
쥐새끼 떼 밤낮없이
기둥 갉는 저 소리
또르르 또옥
또르르 또옥
늙어빠진 노새들
눈물방울 맺히는 소리
왈왈왈 왈왈왈
왕왕왕 왕왕왕
쓸개 빠진 개들이
짖어대는 저 소리
물들여라 물들여라
하양도 빨갛게 빨갛게
물들어라 물들어라
회색도 빨갛게 빨갛게
붉은 이무기 용트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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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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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은 삶의 한편에서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시로 풀어내며, 권력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놓지 않는다.
그녀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평화를 가장한 억압과, 세속적 이익을 좇아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내는 데 탁월하다. 이러한 시인의 삶은 시 「헤게모니」에서 표현된 상징적 이미지와 서사적 흐름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는 시인이 꿈꾸는 진정한 평화와 정의의 의미를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다.
"따따따 따따따 / 뚜뚜뚜 뚜뚜뚜 / 도둑이 불어대는 / 평화의 나발소리"
첫 행에서는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는 나발 소리가 들리지만, 이는 실상 도둑이 불어대는 거짓된 메시지이다. 시인은 여기에 '도둑'이라는 상징적 표현을 통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선과 속임수를 드러낸다. '나발소리'는 가식적이고 겉모습에 불과한 평화를 지적하며, 실제로는 세상에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풍자적으로 나타낸다.
"빠각 빠각 빠각 / 빠각 빠각 빠각 / 쥐새끼 떼 밤낮없이 / 기둥 갉는 저 소리"
여기서는 ‘쥐새끼 떼’가 등장하며, 그들이 기둥을 갉아먹는 소리가 반복된다. 이는 사회 곳곳에서 제도와 규범을 파괴하며 이익만을 탐하는 존재들을 비유한 것이다. '기둥'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본을 의미하며, 그 기둥을 갉아먹는 행위는 사회 질서와 정의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또르르 또옥 / 또르르 또옥 / 늙어빠진 노새들 / 눈물방울 맺히는 소리"
시인은 이제 노새의 눈물이라는 서정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의 고통을 그려낸다. 노새는 노동에 시달리고 희생하는 이들을 상징하며, 그들의 고단함과 울부짖음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이는 시인이 바라보는 사회의 상처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구절이다.
"왈왈왈 왈왈왈 / 왕왕왕 왕왕왕 / 쓸개 빠진 개들이 / 짖어대는 저 소리"
이 구절에서는 '쓸개 빠진 개들'이라는 강렬한 표현이 등장한다. 이들은 의미 없는 논쟁과 헛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며, 주관 없는 사람들의 추태를 비꼬는 듯하다. 시인은 이를 통해 소리만 요란할 뿐 실질적 가치는 없는 사회적 현상을 비판한다.
"물들여라 물들여라 / 하양도 빨갛게 빨갛게 / 물들어라 물들어라 / 회색도 빨갛게 빨갛게"
이 부분에서는 색채의 상징을 통해 세상의 변질을 드러낸다. 흰색과 회색은 순수함과 중립성을 상징하며, 이들이 붉게 물들어가는 과정은 권력에 의해 진실과 순수가 왜곡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시인은 이것을 통해 권력이 이념과 감정을 조종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붉은 이무기 용트림 소리"
마지막 구절에서는 '붉은 이무기'라는 부정적 세력의 상징을 통해, 허세의 모습을 그린다. 이무기가 용으로 변하려는 순간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악한 세력인 붉은 이무기가 어리석은 국민에게 용인 척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행위이다
요컨대, 이인애 시인의 '헤게모니'는 사회와 권력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시적 성찰로 가득하다. 다양한 소리와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현실 속 위선과 억압을 해부하며, 독자가 진실된 평화와 정의를 고민하게 만든다.
시의 첫 구절에서 들려오는 “도둑이 불어대는 평화의 나발소리”는 가식적인 평화의 외침을 비판적으로 담아내며, 권력자들이 겉으로는 평화를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이 숨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어지는 “쥐새끼 떼”와 “노새”의 이미지는 공동체의 근간을 갉아먹는 존재들과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려내며, 이를 통해 시인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또한, “쓸개 빠진 개들”의 소란은 의미 없는 논쟁과 허황된 목소리의 상징으로, 내실 없이 요란한 사회적 현상을 풍자한다. 이러한 소음들은 불필요하고 유해한 외침으로 시적 효과를 배가하며, 독자가 현 사회의 부조리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만든다.
마지막 행에 허세로 가득찬 사악한 세력인 '붉은 이무기'는 어리석은 국민에게 용인 척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 시는 시적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통해 독자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시인은 각기 다른 소리와 상징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어,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과 억압자들의 위선을 대비시키며, 세상의 진정한 평화와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