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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08. 2024

밀밭이 바람에 춤을 추고

쌩떽쥐베리 어린 왕자 ㅡ 문학평론가ㆍ수필가 김왕식






          밀밭이 바람에 춤을 추고


                                    K




노을이 깔린 들판에 밀밭이 바람에 춤을 추고, 그 위로 이슬이 고요히 빛난다. 노란 밀 이삭들이 햇살을 머금고 흔들릴 때마다 너의 황금빛 머리칼이 떠오른다. 우리 사이에도 그런 빛이 깃들어 있었지. 서로에게 낯설고 두려운 마음을 숨긴 채, 한 번쯤 모르는 척 지나치기도 했던 그때. 하지만 새벽녘에 스며든 작은 이슬만큼의 용기로 다가가 서로를 알아보았던 순간이 기억나. 아주 조용한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디뎠던 그날, 우리 사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라는 것이 참 묘하지. 처음엔 그저 우연히 마주친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마치 같은 밀밭의 이삭처럼 흔들리는 삶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가 되는 일.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갔다. 이건 길들여지는 일일까, 아니면 서로의 고유한 색을 남겨 두며도 함께 춤출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고 신뢰한다는 건 아마도 거짓 없는 노을처럼 드문 일이다. 서로의 속내를 진실하게 바라보고, 그 모든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사람이란 무엇인지, 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마음 깊숙이 새겨진 고독감과 위안이 이리저리 갈등하며, 황금빛 노을 아래 머무르는 내 마음이 어린 왕자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왕자는 말했지, 자신이 길들인 것을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고.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린 서로의 삶에 작은 책임감을 느끼며 서서히 가까워졌던 것 같아. 그 길들임이란 죽음조차도 무서워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일지 몰라. 하지만 그 믿음의 길은 서로의 이슬방울 같은 용기로 채워질 때 가능해지지 않을까?

저문 들판에 황금빛 밀밭이 흔들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길들여졌던 순간들이 서서히 떠오른다. 너무 눈부시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길들여져 갔던 걸까. 밀밭 사이에서 서로를 찾던 그날의 설렘은 아직도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노을 진 들판 위 밀밭이 춤추고,
이슬이 조용히 빛을 머금네.
너의 황금빛 머리칼이 떠올라,
우리 사이에도 스며든 따스함.

서로 낯설고 두려움에 감춰도
새벽이슬만큼의 작은 용기로
우린 서로에게 다가섰지.

길들여진다는 건 어쩌면
죽음마저 두렵지 않은 신뢰,
너와 나, 한 몸이 된 마음일까.

완벽히 알 수 없더라도
작은 책임의 씨앗이 싹트듯
서로를 길들여 간 시간 속에

아직도 들판에서 춤추는
그날의 설렘이 남아 있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글은 사람 사이의 관계, 특히 우정을 아름답게 묘사하며, 그 안에 내재된 두려움과 용기, 그리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따뜻함을 진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밀밭과 이슬, 황금빛 노을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시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관계의 본질을 탐구한다. 작가는 노을 진 들판과 흔들리는 밀밭을 상징적인 배경으로 삼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용기와 상호 책임감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전한다.

첫 부분에서는 서로가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숨기고 지나쳤던 시간을 회상하며, 작은 이슬방울 같은 용기로 서로를 알아보았던 순간을 묘사한다. 이 장면은 일상적인 친구 관계에서 나타나는 어색함과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러한 감정들을 극복하고 다가섰을 때 비로소 진정한 우정이 시작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관계는 처음에는 두렵고 낯선 것이지만, 한 발짝의 용기가 그것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중반부에서는 작가가 "길들여진다"는 개념을 통해 관계의 깊이를 탐구하는데, 이는 어린 왕자의 문학적 상징을 빌려온 것이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돌보며 관계를 통해 성장했던 것처럼,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며 점차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 길들여짐이란 단순히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신뢰는 죽음조차 두렵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관계에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한 이 글은 관계의 불완전함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고독감도 놓치지 않고 있다.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일은 흔치 않다는 점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는 단순히 관계의 이상적인 면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현실적 어려움과 고민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글의 깊이를 더한다. 이는 독자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복잡한 감정들과 씨름하며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관계의 본질을 "작은 이슬방울 같은 용기"와 "서로에 대한 책임감"으로 요약한다. 우리가 관계를 통해 성숙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작은 순간들의 연속임을 상기시킨다. 서로에게 다가섰던 그날의 설렘과 두려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관계란 바로 그런 소중한 순간들의 축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요컨대, 이 글은 자연의 이미지와 문학적 상징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아름답고도 복잡한지에 대해 진솔하게 표현한다. 이 글이 전하는 것은 단순한 우정의 감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길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이다.






존경하는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큰 위로와 깨달음을 얻은 독자입니다. 요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저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작가님의 글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최근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과연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가치관 속에서 진정한 이해란 무엇이며, 관계에서 요구되는 신뢰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이 깊어져만 갑니다. 특히, 어려운 순간에 오히려 서로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가까이 있던 이가 오히려 멀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완벽히 서로를 알고 신뢰하는 관계를 쌓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진심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작고 사소한 오해나 갈등이 크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에서 “작은 이슬만큼의 용기로 다가갔던 순간”이라는 표현을 읽고 나니,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해 관계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더 용기 있게 다가갔더라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길들여짐’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서로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길들여진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관계의 깊이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를 돌보고 길들이듯, 친구와의 관계도 그러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 길이 험난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쌓이는 신뢰와 애정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어봅니다.

어렵고 힘든 관계 속에서 좌절할 때, 작가님의 글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때로는 한 몸처럼 가깝게,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작가님께서 저에게 주신 이 공감과 위로의 힘을 통해, 용기를 내어 친구와 다시 소통하고, 진정한 신뢰를 쌓아가고자 합니다.

귀중한 글로 큰 깨달음을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와 같은 많은 이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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