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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08. 2024

오해와 이해의 간극

김왕식









                오해와 이해의 간극





오해와 이해의 간극은 사람 사이의 가장 깊고, 동시에 가장 얕은 틈새일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만, 그 언어와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며, 이로 인해 끊임없이 오해가 생겨난다. 어떤 이는 진심을 다해 말을 전하지만, 상대방에게 그 진심이 왜곡되어 전달될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듯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오해는 그 자체로 아픔이자 외로움이며, 때로는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철학자들은 이해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이해는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듣고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고유한 시각과 경험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다. 타인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의 고유성을 포기하는 행위이기에 두렵고, 때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해는 오해를 지우려는 노력 속에서 생겨나지만, 그 오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오해와 이해는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모순된 존재이다.

오해의 본질에는 한계와 불완전함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때로는 타인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이해의 본질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끝없는 노력에 있다. 우리는 완전한 이해를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성장하며, 오해와 이해 사이의 틈새를 조금씩 메워간다.

이해는 오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해를 포용하는 데 있다. 우리는 타인의 세계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다가가려는 태도에서 이해는 시작된다. 이때 오해는 이해의 그림자가 아니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의 복잡한 내면을 헤아리며 고유의 의미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고, 이 오해는 결국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결국, 오해와 이해의 간극은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도전이자 숙명이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다가가려는 이 과정이야말로, 인간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 것이다. 오해 속에서 우리는 이해를 발견하며, 그 간극을 메우는 노력 속에서 삶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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