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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바심(타작) ㅡ 시인 한연희

김왕식








들깨 바심(타작)



시인 한연희



도리깨로 얻어맞은 깻대
깨 쏟아지는 경쾌한 소리
행복 쏟아지는 소리
코가 절로 벌름거린다

여저기 둘러보아도
들깨는 보이지 않고
연기 타고 향기만
집안까지 스며든다

화르르 불살라
깨 벗은 잔잔한 온기
아물아물 가슴 자락
적셔오는 어머니의 새벽

그땐 몰랐다
들깨 볶아 기름 짜고
강정 속에 박힌
어머니의 진심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연희 시인은 자연 속에서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일상 속 사소한 것에서 인간의 진심과 감동을 발견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진 시인이다. 특히, 그의 작품은 소박한 시골 생활의 정취와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가족의 사랑과 헌신을 드러낸다.
'들깨 바심(타작)'은 그의 이러한 삶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들깨 타작이라는 농촌의 평범한 장면을 통해 어머니의 진심과 사랑을 깊이 새기는 작품이다.

"도리깨로 얻어맞은 깻대
깨 쏟아지는 경쾌한 소리
행복 쏟아지는 소리
코가 절로 벌름거린다"

깻대가 도리깨로 타작되는 모습을 ‘얻어맞는다’는 의인화로 표현하여 생동감을 더했다. 깨가 쏟아질 때의 경쾌한 소리를 ‘행복 쏟아지는 소리’로 치환하여 노동의 성과를 단순한 물질적 결과가 아닌 정신적 기쁨으로 승화시켰다. ‘코가 절로 벌름거린다’는 향기가 가진 물리적 효과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며, 노동의 보람과 즐거움을 전한다.

"여저기 둘러보아도
들깨는 보이지 않고
연기 타고 향기만
집안까지 스며든다"

깻대 타작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그 잔재인 향기는 집안 구석구석까지 퍼진다. 들깨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변환시킨 것은 단순히 물질적 성취가 아닌 감각적 경험과 추억의 잔영을 남기는 행위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소멸과 지속, 노동의 과정과 결과를 대비시킨다.

"화르르 불살라
깨 벗은 잔잔한 온기
아물아물 가슴 자락
적셔오는 어머니의 새벽"

‘화르르’라는 표현은 불타는 순간의 강렬함과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그려내며, 깨를 벗긴 후의 잔잔한 온기로 전환된다. 이 대비는 노동 후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상징하며, ‘아물아물’은 어머니의 새벽이라는 따뜻한 감각적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 이는 어머니의 헌신을 부드럽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그땐 몰랐다
들깨 볶아 기름 짜고
강정 속에 박힌
어머니의 진심을"

과거에는 몰랐던 어머니의 진심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깨달아진다. 들깨를 볶아 기름을 짜고 강정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상징하며, 이는 노동이 단순한 생계유지가 아니라 사랑과 진심의 발로임을 보여준다.

'들깨 바심(타작)'은 평범한 노동의 장면을 통해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연희 시인은 단순한 농촌 생활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삶의 진정성과 연결시키며 일상적 노동 속에서 행복과 진심을 발견하는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시적 표현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감각적 이미지와 의인화를 활용하여 노동의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점이다. 깨가 쏟아지는 소리와 향기의 이미지는 노동의 성과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며, ‘화르르’나 ‘아물아물’ 같은 의성어는 시적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또한, ‘그땐 몰랐다’는 구절을 통해 과거의 무지에서 현재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정서적 흐름이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한연희 시인의 작품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과거의 노동과 헌신 속에 숨겨진 진심을 깨닫게 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들깨 바심(타작)'은 사랑과 헌신,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시적 언어로 재구성하여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한연희 시인님께




안녕하신지요. 시인님의 '들깨 바심(타작)'을 읽으며 잊고 지냈던 따뜻한 기억들이 떠올라 이렇게 글을 씁니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의 한 장면 속에 어머니의 진심을 그토록 깊이 담아내셨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도리깨로 깻대를 타작하며 깨가 쏟아질 때의 경쾌한 소리를 ‘행복 쏟아지는 소리’라고 표현하신 대목에서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단순한 농사일의 한 순간을 이렇게 기쁨과 행복의 장면으로 승화시킨 시인의 시선이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연기 타고 향기만 집안까지 스며든다’는 표현은 눈앞에 들깨가 없어도 그 향기가 온 집안을 감싸는 장면을 감각적으로 그려내셨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우리 삶 속 깊이 스며 있다는 상징처럼 다가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어머니의 진심은 마치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 같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당연했던 어머니의 수고가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경험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시인님의 작품은 단순한 일상 속에서 깊은 철학과 따뜻한 감성을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들깨 타작이라는 시골의 소소한 풍경이 이렇게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저 또한 시골에서 자라며 경험했던 작은 순간들이 떠오르며 그 안에 담긴 부모님의 사랑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하길 바랍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시로 계속 만나 뵙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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