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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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기도
시인 김정희
하룻밤 같이 잔
문향선생님 엄마가 쑥국을 드시고
싶다 한다
쑥은 한 사람 쑥국밖에 되지 않아
작은 거까지
가위로 자르고
다음 쑥이 자라면
쑥국을 끓여 먹기로 한다
내 고향 창평에도 쑥이
자라고 있겠지
외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내 손에 딱 맞는 칼과
작은 대바구니는
누가 주인이 되었을까
어렸을 때 바구니와 쑥칼을
가졌던
나는 쑥만 생각하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나이 들어 이제
나도 할머니 되어
머리카락 빠뿌리가 되고
얼굴도 이빨도 다 할머니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촛불을 켜시고
책을 읽으시며 하늘에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책장 넘기는 소리에
잠이 깨어 눈만 살짝 뜨고
이불속에서 일어나 보면
책을 넘기는 소리
기도 소리
한숨 소리에
새벽을 보내고
아침이 왔다
다들 어렵게 지냈던 시절
외할머니도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으셨다
3남 2녀 중 엄마만 살아남아
아들 없는 서러운 한숨과 눈물이
함께 했다
할머니의 기도
할머니의 기원
소리가 오늘은 생각난다
눈물 한 자락이 강이 되고
한숨 두 자락이 바다가 되어
학처럼 훨훨 날아
새가 되어 높이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날고 싶다
책은 할머니 강이었다
책은 할머니 한이었다
책은 할머니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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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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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시인의 '할머니의 기도'는 세대를 잇는 정서적 기억과 고난의 역사를 섬세하고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는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할머니의 기도와 고난의 삶을 통해 인간의 의지와 꿈을 묘사한다.
이 작품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인은 독자들에게 따스한 울림과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시의 중심에는 외할머니라는 인물이 놓여 있다. 시인은 외할머니가 쑥국을 끓이며 생계를 이어가던 당시의 어려운 시절을 떠올린다.
쑥국을 준비하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3남 2녀 중 엄마만 살아남아”라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할머니의 삶은 고난과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새벽마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의 의지를 상징한다. 한숨과 눈물 속에서도 책장을 넘기며 꿈을 꾸던 모습은, 기도가 단순히 종교적 행위를 넘어선 할머니의 생존 방식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할머니의 기도를 “눈물 한 자락이 강이 되고, 한숨 두 자락이 바다가 되어”라는 비유로 풀어낸다. 이는 할머니의 기도가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삶의 고난을 넓은 시야와 큰 꿈으로 승화시켰음을 상징한다. 시에서 책은 할머니에게 있어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강이자 한(恨)이며, 동시에 꿈이었다.
이는 물질적 빈곤 속에서도 정신적 풍요를 잃지 않았던 할머니의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할머니는 자신의 한을 책과 기도를 통해 승화시키며,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잃지 않았다.
쑥국과 작은 대바구니, 손에 꼭 맞는 쑥칼 등은 시인이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소재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기억과 추억의 매개체이다.
어린 시절의 시인은 이 바구니와 칼을 통해 외할머니와 교감했으며, 이는 시인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흘러 이제 시인 자신도 할머니가 되었을 때, 외할머니와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모습은 인간이 세대를 넘어 어떻게 기억과 정서를 공유하며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김정희 시인은 일상적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적 질문을 탐구한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날고 싶다”는 소망은 단순히 외할머니의 꿈을 넘어서, 인간 모두가 가지는 보편적 열망을 나타낸다.
특히, 할머니의 기도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꿈과 의지는 곧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시인은 이러한 철학적 성찰을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따뜻하면서도 사유를 자극하는 작품을 선사한다.
이 시는 단순한 개인적 회고를 넘어, 인간의 삶에서 반복되는 고난과 그 극복의 과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책을 통해 할머니의 고난이 예술적 상상과 꿈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 시는 인간의 내면적 강인함과 정신적 풍요를 강조한다. 시인의 언어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그 속에는 깊은 정서와 철학적 성찰이 깃들어 있다.
요컨대, 김정희 시인의 '할머니의 기도'는 고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세대를 이어가는 정서적 유대와 인간 정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과거를 돌아보게 하며,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바라보는 통찰을 제공한다.
김정희 시인의 삶과 철학이 온전히 녹아든 이 시는, 독자들에게 따뜻한 울림과 함께 깊은 사유를 제시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