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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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로
시인ㆍ 수필가 文希 한연희
우리 집 뒤뜰엔 커다란 은행나무와 마로니에 나무가 있다. 이맘때 나의 시름을 달래주는 일등 공신이다. 언덕배기 은행나무에 바람이 분다.
후두두두 툭! 가슴 시린 추억이 쏟아지는 나무 아래 서서 노란 비 함초롬 맞으면 혼자 내려오지 못해 누렇게 뜬 희망, 갈바람 길 안내 따라 이리저리 건들건들 여행길에 올라탄다.
이명耳鳴은 쉬는 시간이 없다. 쏴아 파도 몰려오는 소리, 온갖 백색 소음에 시달린다. 고단한 순간을 잠시라도 잊으려면 은행나무 아래로 가야 한다.
투 욱 툭 떨어진 은행 주워다 깨끗하게 씻어 말려놓고 틈날 때마다 까서 파르스름한 은행 몇 알씩 남편에게 주면 황송한 표정으로 집어먹으며 엄지 척을 해준다. 남편의 행복한 표정은 내가 엄청난 내조를 하는 듯한 착각으로 이끈다.
남편은 은행을 줍거나 손수 까서 먹어본 적이 없다. 매년 은행을 대놓고 먹으니 복 많은 남자다.
오색찬란한 단풍놀이는 커피믹스 한 잔 들고 벤치에 앉아 마시면 제격이다. 맘만 먹으면 쥐락펴락하는 풍요에 제철 음식을 곁들이면 더 바랄 게 없다.
철없는 꽃이 주는 보너스에 포동포동 영근 모과는 어찌나 향기로운지 집안 가득 기쁘다.
아삭아삭 식감 좋은 보라색 콜라비, 식탁 차리는 내내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은 건강한 먹거리와 함께 어깨춤을 일으켜 세운다.
햇 서리태 넣고 지은 잡곡밥과 된장 풀어 끓인 배춧국, 삭힌 고추와 겉절이, 쫄깃한 은행과 군고구마, 콜라비와 단감과 사과, 맞춤형 감사 플러스 식탁으로 이어지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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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ㆍ수필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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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작가의 수필 은행나무 아래로는 소소한 일상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배경으로 삶의 가치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이 글은 작가의 삶과 철학이 녹아든 문장들로, 독자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소박한 행복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뒷마당의 은행나무와 마로니에 나무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포착하며, 낙엽과 함께 추억과 희망을 되새긴다. “노란 비 함초롬 맞으면”과 같은 표현은 은행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감각적으로 그려내어 자연 속에서 고단함을 위로받는 인간의 모습을 함축한다. 특히 바람 따라 흩날리는 은행잎에 희망을 투영한 대목은 작가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철학을 잘 드러낸다.
이어지는 문단에서, 작가는 이명耳鳴과 같은 육체적 불편함을 고백하면서도 이를 자연 속에서 치유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일상의 고단함을 극복하는 작가의 삶의 방식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남편과 함께한 은행 열매의 에피소드는 소박하지만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엄청난 내조를 하는 듯한 착각”이라는 표현은 유머를 곁들여 글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일상에서 발견한 소소한 즐거움을 잘 나타낸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제철 음식을 즐기고, 단풍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는 풍경이 펼쳐진다.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여유와 감사의 태도를 강조한다. 특히, 계절의 보너스로 묘사된 “포동포동 영근 모과”와 같은 표현은 자연이 주는 선물에 대한 경외를 담고 있다. 건강한 음식과 음악으로 채워지는 식탁 장면은 작가의 가치 철학과 미의식을 한껏 드러내며, 일상적 행위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은행나무 아래로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 스며든 자연의 풍요로움과 감사의 마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고단함을 달래고, 소소한 기쁨을 통해 가족과의 유대를 확인하며, 결국 ‘풍요’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임을 보여준다. 이 수필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삶을 더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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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작가님께
작가님의 시로 마음 깊이 감동받아온 독자입니다. 시 한 구절마다 담긴 깊은 울림과 따뜻함이 삶의 노정을 밝히는 등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작가님의 수필 '은행나무 아래로'를 읽으며 또 한 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자연과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행복과 감사의 가치를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뒷마당의 은행나무와 마로니에 나무, 바람에 흩날리는 은행잎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셨습니다. 그 안에 담긴 추억과 희망, 그리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연을 통해 위로받는 모습은 저에게도 깊은 공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혼자 내려오지 못해 누렇게 뜬 희망, 갈바람 길 안내 따라 여행길에 올라탄다”는 표현은 이 작품의 압권입니다.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한 듯하여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수필 속에서 작가님께서 남편분과 나누시는 은행 열매의 일화 또한 무척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속에 담긴 작가님의 세심한 배려와 유머는 삶의 소소한 순간들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 같습니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누리며 감사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독자들과 나누려는 작가님의 태도는 저에게도 더 많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계절의 보너스처럼 다가오는 단풍과 모과, 아삭아삭한 콜라비를 차리며 나누는 한 끼의 식탁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님께서 묘사하신 그 장면들은 저의 일상 속에서도 감사할 것들을 찾게 했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이렇게 진솔하게 그려내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의 시와 수필은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글 한 편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이런 글을 써주시는 작가님이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희망을 품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글이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밝혀주리라 믿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작가님의 글을 통해 많은 감동과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