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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그 그윽하다 고요 ㅡ 시인 백영호

김왕식







고요, 그 그윽하다 고요



시인 백영호





고요다
천지가 고요하다
고요의 바다에서
고요를 보내고 있다

고요에서 고요를 낚는다
작은 고요
크낙한 고요
세상천지 고요를 낚아
찰나를 낚는 순간의 시공간

고요가 파도친다
쓰나미로 덮치는 고요
고요는 소리 않는 아우성
침묵 속의 밀당 용호상박

고요 속에 고욘 고요하다
허나 그건 한시성이지
이 고요를 삼킬 자 누구뇨
해가 뜨면 깨어질 것이
어찌 이 고요뿐이랴

동이 트는가
내 속의 고요한
자아가 기지갤 켠다
내가 움직일 시간이 왔다.






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은 일상 속에서 쉽게 간과될 수 있는 감정과 순간들을 심오한 시적 언어로 변환해 내는 천재 작가이다.
그의 시에는 내면의 성찰과 우주적 고요를 사유하는 철학적 깊이가 녹아 있다.
이번 작품 '고요, 그 그윽하다 고요'는 "고요"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세계와 자아를 탐구하며, 고요 속에 내재된 역동성과 충돌을 조명한다.
이 시는 고요를 단순한 정적 상태로 그리지 않고, 내면적 움직임과 우주적 파동으로 확장시키는 독창적 미학을 보여준다.

"고요다 /
천지가 고요하다"

첫 행은 선언적이다. "고요"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시적 화자가 직면한 세계의 총체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천지가 고요하다는 표현은 고요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감각으로 제시하며, 독자를 정적이지만 묵직한 시작점으로 이끈다.

"고요의 바다에서 /
고요를 보내고 있다"

여기서 "고요의 바다"는 단순한 자연적 묘사가 아닌, 화자의 내면세계를 암시한다. 고요를 보내는 행위는 고요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인간이 정적 속에서도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요에서 고요를 낚는다 /
작은 고요 /
크낙한 고요"

"낚는다"는 동적 이미지로, 고요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작은 고요와 큰 고요는 고요의 스펙트럼을 묘사하며, 일상의 순간과 우주의 넓이를 모두 포함하는 고요의 다층적 의미를 전달한다.

"세상천지 고요를 낚아 /
찰나를 낚는 순간의 시공간"

여기서 고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찰나刹那는 일상의 한순간처럼 보이지만, 이 시에서는 그 순간이 고요를 통해 영원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기능한다.

"고요가 파도친다 /
쓰나미로 덮치는 고요"

이 대목은 고요가 정적이지 않음을 강조한다. 파도치는 고요는 역동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쓰나미"는 고요가 가진 내재적 힘을 드러낸다. 이는 화자의 내면 갈등과도 연결된다.

"고요는 소리 않는 아우성 /
침묵 속의 밀당 용호상박"

고요의 본질은 단순한 침묵이 아닌, 보이지 않는 내적 투쟁과 상호작용으로 묘사된다. "소리 않는 아우성"과 "용호상박龍虎相搏"은 고요 속에서 벌어지는 역설적 긴장감을 함축한다.

"고요 속에 고욘 고요하다 /
허나 그건 한시성이지"

"고욘 고요하다"는 고요의 절정 상태를 표현하면서도, 그것이 일시적임을 시인은 인정한다. 이는 영원하지 않은 인간의 상태와 자연의 순환성을 암시하며, 고요가 일종의 덧없음을 내포함을 보여준다.

"이 고요를 삼킬 자 누구뇨 /
해가 뜨면 깨어질 것이"

고요의 덧없음은 "해가 뜨면"이라는 현실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명확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를 삼킬 자가 없다는 말은 고요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동이 트는가 /
내 속의 고요한 자아가 기지갤 켠다"

여기서 고요는 자아의 성찰적 상태로 구체화된다. "기지개"라는 표현은 내면의 고요가 외부 세계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상징하며, 고요가 새로운 시작의 원동력이 됨을 시사한다.

"내가 움직일 시간이 왔다"

결말에서는 고요가 단순한 정적 상태를 넘어, 실천적 행동과 연결된다. 화자는 고요 속의 사유를 기반으로 실제적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이는 고요의 경험이 내면적 성찰에서 외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백영호 시인의 '고요, 그 그윽하다 고요'는 고요를 정적인 침묵이 아닌, 내면적 역동성과 우주적 긴장감으로 풀어낸다.
"낚는다"와 "파도친다" 같은 동적 이미지들은 고요의 다층적이고 역설적인 본질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또한, 고요를 통해 찰나의 순간을 초월적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시인의 철학은 독창적이다.
이 작품은 고요 속에서 움직임과 변화를 발견하는 시인의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독자로 고요의 새로운 의미를 탐구하도록 이끈다.







백영호 시인님께





안녕하십니까. 시인님의 시 '고요, 그 그윽하다 고요'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독자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시에 대한 제 느낀 바를 전하고 싶습니다.

시인님께서 그려낸 고요는 단순히 소리 없는 정적 상태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파도치며 움직이는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고요에서 고요를 낚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명상적 상태를 넘어, 고요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능동적 삶의 자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고요가 그저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잇는 찰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유는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고요가 파도친다 / 쓰나미로 덮치는 고요"라는 대목은 저의 고요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고요가 단순히 정적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갈등과 성찰을 동반하며 때로는 쓰나미처럼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시인의 통찰에 감탄했습니다. 이러한 역설적 표현들 속에서, 시인님께서 세계를 바라보는 독창적 시선과 내면적 깊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의 결말에서 "내 속의 고요한 자아가 기지갤 켠다"라는 구절은 고요가 단순히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움직임을 준비하는 시간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고요 속에서 자아를 찾고, 그 자아가 현실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시인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시를 읽고 난 후, 저 또한 제 삶 속의 고요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작은 고요들이 사실은 거대한 파도와 같은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니, 지금까지 소홀히 여겼던 순간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시인님의 고요는 독자인 저를 조용히 사로잡아, 사유의 바다로 깊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느꼈던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짧은 글로 모두 담아낼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통해 시인님께 제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의 시를 통해 더욱 많은 사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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