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시 ㅡ 시인 이강은

김왕식

■


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시



시인 이강은





구름이 심술 난 입꼬리를 그려내자
폭설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질문이 난무했으나
하늘은 응답하지 않았다

습설을 잔뜩 이고 있던
백 년 넘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인도를 가로막고 나서야
사람들은 영상을 담아내며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비명을 품은 바람이 오지 않아 다행이다
따신 온도의 시작점인
빈곤한 마을의 겨울나기 프로젝트가 오늘 막을 올렸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강은 시인은 삶의 작은 흔적들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탐구하며, 그 사이의 갈등과 화합을 시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특히,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무관심 속에 잉태된 아이러니를 정교하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함께 따뜻한 공감의 메시지가 공존한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심도 있게 탐구하려는 작가의 가치철학을 반영한다. 이 시에서도 하늘과 구름, 그리고 눈과 같은 자연 요소를 통해 인간의 삶과 감각을 사유하는 시인의 미의식이 돋보인다.

"구름이 심술 난 입꼬리를 그려내자 / 폭설이 시작되었다"

구름을 의인화하여 감정을 부여한 표현이 압권이다. "심술 난 입꼬리"는 자연의 예측 불가성과 인간 감정의 투영을 암시한다. 폭설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내면의 불안이나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이를 통해 자연이 단순히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닌, 인간 삶의 일부로서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수많은 질문이 난무했으나 / 하늘은 응답하지 않았다"

질문과 응답이라는 대립 구조가 눈에 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하늘은 묵묵히 침묵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하늘의 침묵은 오히려 인간이 자기반성과 깨달음을 얻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습설을 잔뜩 이고 있던 /
백 년 넘은 나뭇가지가 /
부러져"

습설을 이고 있는 나뭇가지는 자연의 인내와 한계를 동시에 상징한다. 백 년 넘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장면은 자연과 시간의 무게를 견뎌온 역사의 종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여기서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과 묘사력이 돋보인다.


"인도를 가로막고 나서야 /
사람들은 영상을 담아내며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인간의 무관심과 뒤늦은 반응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인도를 가로막기 전까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현실은 자연과 인간의 단절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소셜 미디어 중심적 시각 문화와 인간 소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비명을 품은 바람이 오지 않아 다행이다 /
따신 온도의 시작점인"
"비명을 품은 바람"

이 구절에는 시적 이미지로 자연의 위력을 부각하면서도, 그것이 오지 않았음을 안도하는 인간의 감정이 담겨 있다. 이 행은 자연의 파괴적 힘과 동시에 그 안에서 느껴지는 희망의 시작점을 연결한다.


"빈곤한 마을의 겨울나기 프로젝트가 오늘 막을 올렸다"

마지막 행은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되며, 시인의 현실 감각을 드러낸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이미지와 "빈곤한 마을"이라는 구체적 설정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시적 흐름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다른 어휘로 대체했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요컨대, 이강은 시인의 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현실의 모순과 자연의 섭리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시는 폭설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인간의 무관심과 뒤늦은 반응을 비판적으로 담아내면서도,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일부 표현에서 더 독창적이고 밀도 높은 언어를 사용했다면 시적 긴장감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관계를 사유하는 태도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