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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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소나무
시인 유숙희
그 무덥던 여름
푸르고 푸르던 잎
사람들 눈
안구정화로
다가선 네 빛
비바람 몰아치고
폭풍이 머리채
잡아 흔들어도
끝끝내 버티고 견딘
그 곧고 질긴 기개
내게서 삶의
위로와 끈기 배우고
보름달이 뜰 때 솜이불처럼
펼쳐진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보름달
계수나무 보듯
상상 나래 폈던
너는 지친
내 영혼의 수호자
찬 공기 머금은 계절
더 푸른빛으로 곧게
내 마음속 있는데
간밤에 첫눈 가장한 폭설이 너를 덮쳤구나
백설의 백미 앞에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기개로
용케 버티어 낸
밤을 하얗게 밝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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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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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은 삶의 여러 얼굴을 자연의 상징적 이미지에 담아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그의 작품은 흔히 강인한 생명력과 끈질긴 의지를 표현하며, 이를 통해 인간 삶의 철학적 깊이를 성찰한다. 이번 시 '눈과 소나무'는 소나무라는 자연물에 시인의 삶의 태도와 이상이 응축되어 있으며, 강인함과 인내를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
자연의 이미지를 인간의 내적 치유와 연결하는 시인의 미의식은 독특한 감동을 준다.
“그 무덥던 여름 /
푸르고 푸르던 잎 /
사람들 눈 /
안구정화로 /
다가선 네 빛”
이 부분은 소나무의 청량한 이미지를 통해 자연이 주는 위로와 생명력을 노래한다. '안구정화'라는 표현은 독특한 감각적 효과를 발휘하며, 소나무의 푸른 잎이 지친 인간들에게 안식처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치유의 역할을 하는 상징으로 기능하는 점이 돋보인다.
“비바람 몰아치고 /
폭풍이 머리채 /
잡아 흔들어도 /
끝끝내 버티고 견딘 /
그 곧고 질긴 기개”
이 부분은 소나무의 강인함을 통해 삶의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강조한다. '머리채 잡아 흔들어도'라는 의인화는 폭풍의 위협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을 부각한다. 인간에게 삶의 교훈을 주는 자연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내게서 삶의 /
위로와 끈기 배우고 /
보름달이 뜰 때 솜이불처럼 /
펼쳐진 구름 사이로 /
얼굴을 내민 보름달”
여기서 시인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위로와 끈기를 얻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 ‘솜이불처럼 펼쳐진 구름’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는 부드럽고 따스한 위안을 상징하며, 보름달은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자연을 통해 삶의 철학적 성찰과 위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계수나무 보듯 /
상상 나래 폈던 /
너는 지친 /
내 영혼의 수호자”
소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영혼의 수호자로 변모한다. ‘계수나무 보듯’이라는 표현은 자연 속에서 상상력을 펼치는 인간의 내면적 여정을 암시한다. 소나무가 영혼의 안식처이자 삶의 동반자로 제시되는 점에서 시인의 가치철학이 드러난다.
“찬 공기 머금은 계절 /
더 푸른빛으로 곧게 /
내 마음속 있는데 /
간밤에 첫눈 가장한 폭설이 너를 덮쳤구나”
폭설은 소나무가 직면한 또 다른 시련을 상징한다. 자연의 극단적 변화 속에서도 소나무는 강인함을 유지하며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이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부분이다.
“백설의 백미 앞에 /
휘어질지언정 /
꺾이지 않는 기개로 /
용케 버티어 낸 /
밤을 하얗게 밝혔구나”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는 표현은 삶의 철학을 대변한다. 폭설이라는 고난을 이겨내며 빛을 내는 소나무는 삶의 어두운 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 부분은 시 전체의 클라이맥스이며, 강인함과 인내의 정수를 보여준다.
요컨대, 유숙희 시인의 '눈과 소나무'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상징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과 철학을 탐구하는 시다. 유숙희 시인은 소나무의 굳건함과 인내를 묘사하며, 삶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는 태도의 중요성을 전달한다.
특히 소나무의 푸른 잎, 폭풍에 맞선 기개, 폭설을 이겨내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을 교차시켜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의 생명력을 인간적 가치와 결부시키는 데 있어 미적 통찰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솜이불 같은 구름'이나 '계수나무를 보는 상상' 같은 표현은 시적 이미지로 삶의 위로와 희망을 담아내며, 독자가 자연 속에서 위안과 교훈을 찾도록 유도한다.
다만 "푸르고 푸르던 잎" 같은 반복적 표현은 서정적 아름다움에는 기여하나, 시의 전개에서 긴장감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를 변주하거나 생략하여 보다 압축적인 구성을 유지했다면 시의 집중력이 한층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이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삶의 철학을 조화롭게 엮어낸 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소나무를 통해 강인한 삶의 상징성을 창조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한 것은 유숙희 시인의 표현력과 사유의 깊이를 잘 드러낸다.
이 시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는 수작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