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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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그리고 그리움
김왕식
117년 만에 내린 첫눈이었다.
단순한 설경이 아니었다. 폭설이 되어 세상을 뒤덮었고, 그 하얀 풍경 속에서 잊히지 않는 얼굴을 떠올렸다. 기억 속 너와 함께 걷던 거리는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네 모습만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눈이 내릴수록 마음은 더욱 시리게 젖어들었고, 바람은 얼어붙은 하늘을 찢어놓듯 매섭게 불어왔다.
하늘 아래 펼쳐진 거리는 우리 추억의 무대였다. 그곳에서 너는 언제나 밝게 웃고 있었고, 나 역시 그 미소에 의지하며 살아갔었다.
오늘, 이 거리는 허공에 떠 있는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돌아보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네가 없는 빈자리가 이토록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눈발 속에 갇힌 거리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울고 있었다.
눈은 꽃처럼 흩날렸다.
하얀 꽃잎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것들이 네 숨결처럼 느껴져 나는 하염없이 손을 뻗었다.
그것은 금세 녹아내리며 내 손바닥 위에서 사라졌다. 마치 너의 흔적도 그렇게 사라진 것처럼.
너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꽃처럼 숨어버린 너를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바람은 잔혹하게 불고, 그 안에서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 목소리는 눈 속으로 파묻혀버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은 첫눈이 내린 날이다.
기쁨의 첫눈이 아니라, 그리움의 첫눈이었다. 눈부시게 하얀 세상 한가운데에서 나는 울고만 있다. 네가 그리워 울고, 네가 보고 싶어 울며, 네가 없는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내가 서럽다.
세상이 눈으로 덮이는 오늘, 나는 네가 이 하얀 눈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믿고 싶다. 꽃처럼 고이 숨은 네가 다시 피어날 날을 기다리며, 이 눈 속에서 너를 찾아 헤맨다. 끝내 허공만 쥔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나는 묻고 싶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숨었는가. 오늘 이 하얀 폭설 속에서 나는 네가 되어버린 눈꽃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