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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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는 날의 그리움
안최호
김장하는 날이면 어머니가 유독 그립다. 겨울이 다가오는 냄새와 함께 밀려오는 추억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김장 김치가 생각난다. 생전에 좀 더 잘해드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가슴을 저민다. 살아 계실 때는 그 손길이 얼마나 귀한지 몰랐으니, 떠난 뒤에야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는다.
어머니는 늘 정성을 다해 김장을 담그셨다. 배추를 절이고 무를 썰며, 달래 무 젓갈을 버무리던 손길은 마치 한 편의 시 같았다. 배추 한 포기마다 어머니의 세월과 한숨이 담겨 있었고,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 귀한 김치 한 입에도 “맛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 침묵이 얼마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에도 김장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김치를 담그며 어머니가 주셨던 사랑과 온기를 떠올리다가 문득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의 김치는 단순히 맛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어머니의 삶과 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상징이었다.
이별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슴 아리고 아련한 것인지 어머니가 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어머니는 늘 내 곁에 계실 것 같았고, 그분의 사랑은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일상이 아니라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이별 후에야 깨닫는다.
김장하는 날이면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어머니의 김치는 이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추억의 맛이 되었고, 그리움의 한 자락이 되었다. 어머니의 손길과 사랑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김치를 담근다. 하지만 그 맛은 어머니가 전해주신 온기와 추억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김장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빛바래지 않을 것이다. 김장하는 날이면, 나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다시 꺼내어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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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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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최호 작가의 이 수필은 김장을 매개로 하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아쉬움을 담담히 풀어낸 작품이다. 독자는 단순한 계절의 풍경을 넘어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서정적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글의 전개는 자연스럽고, 어머니의 손길과 정성, 그리고 그로 인한 사랑의 깊이가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수필은 회한과 그리움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절제된 문체로 표현되어 읽는 이에게 공감을 준다. 특히 어머니가 남긴 김치의 맛을 삶의 상징으로 확장시킨 부분은 인상적이다. 김치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깃든 삶의 기록임을 암시하는 구절은 글의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이 수필의 아쉬운 점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다소 익숙한 소재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김장을 통해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야기 구조는 감동적이지만, 독창성 면에서 크게 새롭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한, 김장이라는 특정 행위에서 비롯된 추억을 묘사하는 데 있어 더욱 구체적인 장면이나 디테일이 추가되었다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의 진정성과 따뜻함은 충분히 돋보인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별의 아픔을 담담히 수용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되새기는 모습은 독자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글은 단순한 회고에서 멈추지 않고, 어머니의 사랑과 삶에 대한 경외감을 일깨우며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수필은 개인적 추억을 바탕으로 하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글이 가진 감동과 서정성은 충분히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