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9. 2024
■
눈 내리는 하늘
시인 권미현
파스텔 블루 하늘 위에서
고요히 내려온 하얀 꽃송이
차가운 공기를 타고
춤추듯 방향 바꾸어 가며
하얀 숨결이 조용히 퍼져간다
눈송이 하나 둘
바람의 손끝에 매달려 춤추다
땅 위에 눕는다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녹아내리는
차분한 겨울의 약속
저마다 곡선을 그리며
한 조각씩 세상을 덮을 때
차가운 공기마저 맑은 울림으로 채워진다
눈 내리는 하늘 아래
구름의 이야기를 가만히 떨구며
고요히 하얀 품에 녹아든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권미현 시인은 자연과 일상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감각적 아름다움을 시로 구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다. 그녀의 시 세계는 삶의 본질과 조화로운 연결을 강조하며, 특히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적 철학이 두드러진다.
이 시 눈 내리는 하늘에서도 겨울의 정적 속에 깃든 생명력과 자연의 섬세한 미학이 깊이 있게 드러나며, 고요 속에서 세상을 품는 넉넉한 품을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예술적 미의식이 돋보인다.
“파스텔 블루 하늘 위에서 /
고요히 내려온 하얀 꽃송이”라는 구절은 시각적 이미지와 색채를 통해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눈을 ‘하얀 꽃송이’로 비유함으로써 자연의 순결함을 강조하며, 이는 시인의 미의식이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생명의 순환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다.
“차가운 공기를 타고 /
춤추듯 방향 바꾸어 가며”라는 표현으로 생동감을 더한다. 눈송이의 움직임을 ‘춤’에 비유함으로써 정적인 풍경을 역동적으로 묘사했으며, 이는 시각적 이미지와 동적인 감각의 조화를 통해 독자에게 생생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춤추듯”이라는 표현은 다소 익숙한 비유로 보일 수 있어 신선함을 더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자연의 움직임을 묘사했다면 더욱 독창적이었을 것이다.
“눈송이 하나 둘 /
바람의 손끝에 매달려 춤추다 /
땅 위에 눕는다”는 세밀한 관찰을 통해 눈송이의 움직임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낸다.
특히 ‘땅 위에 눕는다’라는 표현은 눈의 착지 순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화롭게 풀어낸다.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녹아내리는 /
차분한 겨울의 약속”은 시적 상상력과 철학이 결합된 구절이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녹아드는 모습은 자연의 포용력을 드러내며, 여기서 ‘겨울의 약속’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치유와 안정감을 암시한다. 이 부분은 시인의 철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핵심 구절로 평가된다.
“저마다 곡선을 그리며 /
한 조각씩 세상을 덮을 때”는 눈송이 하나하나의 개별적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세상에 스며드는 과정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미시적 관찰에서 거시적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시인의 시적 의도가 잘 드러난다.
“눈 내리는 하늘 아래 /
구름의 이야기를 가만히 떨구며 / 고요히 하얀 품에 녹아든다”는 시의 마무리로서 탁월하다. 구름이 이야기를 떨군다는 은유적 표현은 자연의 언어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며, 독자를 겨울의 고요와 생명력 속으로 초대한다.
다만 “고요히 하얀 품에 녹아든다”는 다소 관념적 표현으로 느껴질 수 있어, 구체적인 이미지로 완성도를 높였다면 더욱 생생한 인상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통해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예찬하며,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연결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시인의 세밀한 관찰력과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지만, 일부 표현에서 다소 익숙하거나 관념적인 어휘가 발견된다.
이를 보완한다면 더욱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는 자연의 미학과 시인의 삶의 철학을 조화롭게 담아내어 독자에게 감각적이면서도 사유의 깊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