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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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구름, 그리고 눈
시인 백영호
하늘대장은
월동 준비에 바빴다
찬바람 고방에 쟁여 놓기
눈꽃 재료 구매하기
스케이트장 현장답사까지
비서실장 바람이 갖고 온
리스트 꼼꼼 점검 마치고는
하늘대장님 구령에 맞춰
바람 비 구름 식구 거느리고
조기 국민체조 끝 무렵에
숨쉬기 운동 크게 하매
두 팔을 벌려 V자 펼쳐
들숨으로
흰구름 양털구름 뭉게구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그리고, 한참 후
날숨으로
그 큰 입에서 쏟아 내는
찰나로 산란하는 눈꽃송이
송이송이송이들
하늘대장 찰나로 순산하는
오호, 눈 부셔라
저 푸른 생명 생명 생명들
마구마구 뿌려댄다
한없이 끝없이 내려온다
더러는 117년 만이랬다
태산을 덮고 길이랑 논이랑
구별 없이 완전하게 덮어
세상은 수평과 수직뿐
수평은 하양 백설기 세상
수직은 펄럭이는 깃발뿐
저 언덕배기로 줄지어 선
산불조심 빠알간 깃발이
펄럭펄럭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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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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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은 자연의 조화와 생명력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시적 감각을 가진 시인이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이를 철학적 성찰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이 시에서도 자연 현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생명력 넘치는 존재로 의인화하여 자연의 순환과 질서를 찬미하고 있다.
특히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통해 눈이 가진 숭고함과 생명 창조의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내며 독자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일깨운다.
‘하늘대장은 월동 준비에 바빴다’는 시작은 시적 의인화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당긴다. 하늘을 대장으로 설정하고 자연의 변화 과정을 마치 인간의 준비 과정처럼 표현함으로써 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가깝게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의인화는 자연 현상을 체계적이고 질서 정연한 삶의 모습으로 은유하며, 독자에게 자연의 섭리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찬바람 고방에 쟁여 놓기’와 ‘리스트 꼼꼼 점검’ 같은 표현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 현상을 구체화한다. 이는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삶과 연결 지으며, 하늘대장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세세한 준비를 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섬세함을 강조한다.
또한 자연의 움직임을 인간적인 노력으로 비유함으로써 독자의 몰입감을 높이고, 자연에 대한 친근한 정서를 자아낸다.
‘조기 국민체조’라는 표현은 자연의 움직임을 일상의 친숙한 장면으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하늘과 구름, 바람이 협력하며 준비 운동을 하는 모습은 자연의 조화와 상호작용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다만 ‘국민체조’라는 표현은 일상적이어서 시적 깊이를 약간 저하시킬 수 있다. 이를 대체할 표현으로 자연의 역동성을 더 풍부하게 표현했다면 시적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들숨으로 흰구름, 양털구름’을 들이마시고 ‘날숨으로 눈꽃을 뿜어내는’ 장면은 자연의 창조 과정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들숨과 날숨이라는 생리학적 행위를 통해 자연의 생명력을 구현하며, 하늘대장이 눈꽃을 창조하는 장면은 숭고한 생명의 탄생으로 승화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호흡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눈꽃이 ‘찰나로 산란하는’ 장면은 겨울의 풍경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순간의 경이로움을 강조한다.
여기서 눈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생명 창조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다만 ‘찰나’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과도한 설명처럼 느껴질 수 있으므로 표현을 조정했다면 더 깔끔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눈꽃이 대지를 덮는 모습은 ‘수평과 수직’이라는 대비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하양 백설기 세상’과 ‘펄럭이는 깃발’은 눈이 만든 세상의 질서와 대비를 강조하며 시의 감각적 측면을 풍부하게 한다.
특히 ‘산불조심 깃발’이라는 구체적인 디테일은 겨울 풍경 속에 인간의 흔적을 더해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연은 시를 강렬하게 마무리한다. 눈꽃이 만들어낸 풍경과 대비적으로 ‘산불조심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자연 찬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백영호 시인의 '하늘과 구름, 그리고 눈'은 자연을 의인화한 독창적 발상과 풍부한 감각적 이미지로 가득 찬 작품이다. 각 행마다 상상력 넘치는 표현과 자연의 질서를 경외하는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만 몇몇 표현에서 반복적이거나 일상적인 어휘가 사용되어 몰입을 방해할 여지가 있으므로 이를 세밀하게 다듬었다면 시의 깊이가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을 생명 창조의 과정으로 승화시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사유하게 하는 데 성공한 아름다운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ㅡ 청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