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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ㅡ 시인 이춘희

김왕식















시인 이춘희






신새벽 바람이
화살나무 가지를 흔드는 사이
유리창에 비친
허공을 항해 힘껏 날았을 게다
아침 햇살 꽂히는 창에
선명한 날개 자국만 남기고
땅에 떨어진 것은
타다 남은 작은 운석이었다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더 높은 무엇을 위해
중력을 거슬러 날아올랐을까

삽으로 작은 구덩이를 파고
불씨 남은 심장과
푸른 하늘에 건네던 노래와
지상의 가벼운 약속들을 묻었다

박주가리 넝쿨 위로
하얀 깃털 두어 점 피어오른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춘희 시인의 시 새는 생의 끝에서조차도 중력을 거슬러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비상飛翔하려는 의지와 그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들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시인은 단순히 새의 죽음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과 연계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열망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는 시인이 압화押花작가로 활동하며 자연의 작은 흔적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철학적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산수유 농업과 예술을 접목하는 그의 삶은 자연과 인간, 이상과 현실 사이의 연결을 추구하는 시의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낸다.

"신새벽 바람이 화살나무 가지를 흔드는 사이 유리창에 비친 허공을 항해 힘껏 날았을 게다"

새벽의 바람과 화살나무 가지는 생동감을 불어넣는 장치로, 새의 비상을 관찰자의 상상력 속에서 완성한다. '허공을 항해 힘껏 날았을 게다'라는 구절은 새가 비록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 비상이 강렬했음을 암시한다. 이는 인간이 비록 죽음 앞에 있을지라도 삶의 열망은 허공에 흔적으로 남는다는 암시로도 읽힌다.

"아침 햇살 꽂히는 창에 선명한 날개 자국만 남기고 땅에 떨어진 것은 타다 남은 작은 운석이었다"

날개 자국과 타다 남은 운석은 죽음 이후의 흔적을 상징한다. 여기서 '운석'은 단순한 새의 잔해가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로, 죽음조차도 위대한 비상의 일부로 포괄하며 생의 의지를 고양한다.
그러나 '타다 남은'이라는 표현은 비상의 열망이 소진된 비극적 측면도 내포한다.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더 높은 무엇을 위해 중력을 거슬러 날아올랐을까"

여기서 시인은 새의 비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질문을 제기한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중력을 거슬러 더 높은 이상을 향하려는 의지는 단순한 새의 본능적 행동이 아니라 인간 삶의 내적 가치와 연결된다. 시적 주제의 핵심을 이루는 구절로, 이 질문은 독자에게도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삽으로 작은 구덩이를 파고 불씨 남은 심장과 푸른 하늘에 건네던 노래와 지상의 가벼운 약속들을 묻었다"

새의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단순한 애도에 그치지 않는다. '불씨 남은 심장'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열정을, '푸른 하늘에 건네던 노래'는 비상의 소망을, '지상의 가벼운 약속'은 일상적 삶의 연약함을 상징한다. 이를 묻는 행위는 생과 죽음을 초월하려는 의식을 나타낸다.

"박주가리 넝쿨 위로 하얀 깃털 두어 점 피어오른다"

죽음의 흔적이 자연 속에서 다시 생명으로 피어나는 이미지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암시한다. '하얀 깃털'은 새의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는 흔적이자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는 시적 여운을 남기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춘희 시인의 새는 죽음에 대한 직관적 묘사에서 시작해 삶의 본질적 열망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시어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으며, 자연적 이미지와 철학적 사유를 조화롭게 엮어냈다.
다만, '삽으로 작은 구덩이를 파고'에서 묘사가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으므로, 더 함축적 언어로 감정적 여운을 강화할 여지가 있다.
이춘희 시인의 시는 삶의 열망과 죽음 이후의 흔적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독자에게 감동과 사유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 춘희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문예사조'에 등단하여 소집으로 "산수유가 보이는 창고(푸른 사상, 2009) 이 있고, 이천문인협회 10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시 쓰기와 함께 압화押花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천백사산수유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아 산수유를 다채로운 문화로 변주하는 중이다.
bom7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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