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피어난 삶의 꽃, 유근원 화백의 미학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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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피어난 삶의 꽃, 유근원 화백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는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었다.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기업의 길을 걸으며,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의 궤적을 밟았다. 대한항공에 입사해 임원에 오른 그는 늘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법학도의 청년 시절, 그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즐겨 읽었다. 시 속에는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시간의 사색이 있었고, 그는 그런 깊이를 가슴에 품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던 그는 자신을 법률이나 기업의 틀 안에 완전히 가두지 않았다. 늘 자신만의 길,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삶의 급격한 전환점은 1998년에 찾아왔다. 신증후군이 악화되어 만성신부전증이라는 병명과 마주했다. 생의 유한함과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내 삶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는가?”라는 물음이 마음을 두드렸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누군가를 위한 삶에만 매달려왔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한 길을 걷고 싶었다. 그것이 예술이었다.
치열한 투병 끝에 아내의 신장을 이식받으며 그는 제2의 삶을 선물 받았다. 유근원 화백에게 이 새로운 생명은 곧 새로운 창조였다. 미술은 그의 두 번째 삶을 위한 선택이었고, 그 시작점에 아내가 있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그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다. “안사람은 제가 그림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었고, 삶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스케치 한 줄 한 줄에 묻어난 그의 노력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섰고, 그의 작품은 차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 프랑스 남서부의 제르스 오슈에서 열린 ‘한국 미술과 문화의 만남’ 비엔날레에 참가하며 그는 화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 나갔다. 첫 전시를 지나 두 번째 전시를 열기까지의 시간은 그의 열정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법학도로서의 삶과 기업인의 경력은 미술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승화되었고, 그의 작품 세계는 고요한 사유와 따스한 생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인생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한 폭 한 폭에는 그가 건너온 시간과 삶에 대한 철학이 스며 있다. 남을 위해 살았던 그의 첫 인생과 달리, 두 번째 인생은 자신을 위해 꽃을 피운 노정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에게 따뜻한 영감을 나누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과장되지 않은 진솔함이 깃들어 있다. 병상에서의 고통, 그 끝에서의 생명의 부활, 그리고 자신만의 삶을 재구성한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낸다. 그는 이제 화단의 원로 화백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의 인품은 고요하고 고매하다. 작품 속에는 그가 투영한 생명의 고마움과 아내와의 동행에서 얻은 사랑의 결실이 깃들어 있다.
삶은 그에게 두 번 주어진 선물이자, 자신이 창조할 캔버스였다. 그는 늘 말한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고 실천한다면, 인생은 언제나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의 작품은 그러한 삶의 신념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유근원 화백은 두 번째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 꽃은 남을 위한 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길을 걷고자 했던 그의 용기를 말해준다. 그 용기가 캔버스에 펼쳐져 세상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2024ㆍ 12ㆍ 3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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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유근원 화백에게 보내는 편지
근원이,
내가 이 편지를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 서울법대 시절, 함께 웃고 떠들던 자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이름 앞에 '화백'이라는 호칭이 붙어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감개가 무량하네.
사실 처음 자네가 미술을 시작했다고 들었을 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네. 법조인의 길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자네 결단은 나에게는 생소했고, 어쩌면 낯선 충격이기도 했네. 우리는 모두 안정된 미래를 꿈꾸며 법학을 선택했고, 사법고시를 통과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품고 살았네.
그런데 자네는 그 길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인생을 선택했지. 나는 그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자네 선택이 얼마나 위대한 용기였는지 깨닫는다네.
자네 삶의 전환점이 된 1998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네. 병상에서의 고통, 삶의 유한함과 마주했던 날들. 그런데 그 시간을 계기로 자네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인생을 설계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네.
특히 아내분의 신장을 이식받으며 두 번째 생명을 얻은 뒤, 그 생명을 자신을 위한 길로 이어간다는 결단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네.
자네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고요한 아름다움과 함께 깊은 철학이 느껴지네. 기업에서 임원으로 성공했던 첫 번째 인생과는 전혀 다른 색채의 삶이지만, 그 안에는 자네의 진심과 사유가 가득 담겨 있다네.
자네 그림에서는 단순히 '그린다'는 행위를 넘어, 삶과 죽음, 고통과 사랑, 그리고 부활의 이야기가 전해지네. 자네는 단순한 화백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 메시지를 예술로 풀어내는 철학자와도 같다네.
최근에 자네의 전시 소식을 들으며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네. 프랑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을 대표해 작품을 선보였다는 소식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네. 그곳에 자네의 그림이 걸렸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였을지 상상만 해도 뿌듯하네.
법대 동기로서, 그리고 너를 오래된 친구로 둔 사람으로서 자네가 걸어온 길이 정말 존경스럽네.
근원이,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네.
나는 법조인의 길을 걸으며 오로지 책임감과 의무에만 충실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게 되더라. 자네가 남긴 말,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인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특히 가슴 깊이 남았네. 자네의 삶이 그런 메시지의 살아 있는 증거네.
자네는 이제 화단의 원로 화백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네를 대학 시절의 '근원이'로 기억한다네.
이제는 '근원이'라는 이름 앞에 화백이라는 무게 있는 이름이 더해졌다네. 자네의 용기, 결단, 그리고 새로운 길을 향한 열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근원이,
자네의 작품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있음을 잊지 말아 줘. 그리고 자네가 걸어온 길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네. 자네의 삶은 단순히 그림 몇 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네. 그것은 삶의 철학과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 그리고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려는 노력의 집합체네.
친구로서, 나는 자네가 보여준 용기에 깊이 감동했네. 앞으로도 자네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전해주길 바라네. 그리고 자네 삶의 두 번째 이야기가 계속해서 빛나기를 응원하네.
늘 건강하고, 자네가 걷고 있는 그 길이 언제나 찬란히 빛나길 기도하며.
자네를 존경하는 친구
서초동에서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