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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이라
시인 백영호
대왕참나무 가지 끝
빛바랜 나뭇잎에
동짓달 달빛이 살짝 걸렸다
며느리 손 끝에
세 살배기 손자
대롱대롱 매달리어
모자지간 재롱잔치라
간밤에 비가 왔나
창 밖 빨랫줄에
오종종 달린 빗방울이
찌든 영혼 말갛게 헹굼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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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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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탁월한 시적 감각을 지닌 작가다. 그의 시는 소소한 일상에서도 깊은 통찰과 따스한 감성을 담아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이 시에서도 작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독자에게 내면의 평화를 선사한다. 그는 빛, 달, 비와 같은 자연의 요소를 활용해 삶의 순환과 정화를 암시하며, 인간관계 속 따스한 유대를 형상화한다.
첫 연에서 "대왕참나무 가지 끝 /
빛바랜 나뭇잎에 /
동짓달 달빛이 살짝 걸렸다"는 자연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대왕참나무'는 강인함과 지속성을, '빛바랜 나뭇잎'은 쇠락한 생명을 나타낸다.
그러나 '동짓달 달빛'이 이를 감싸며 새로운 희망과 평온을 암시한다. 시인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깨달아야 할 겸손과 순응의 자세를 말한다.
두 번째 연에서
"며느리 손 끝에 /
세 살배기 손자 /
대롱대롱 매달리어 /
모자지간 재롱잔치라"는 가족 간의 유대를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세 살배기 손자'는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이며, '재롱잔치'는 세대 간의 따뜻한 연결을 형상화한다.
작가는 삶의 순간순간에서 발견되는 행복의 본질을 보여주며,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정서적 회복을 제안한다.
세 번째 연의
"간밤에 비가 왔나 /
창 밖 빨랫줄에 /
오종종 달린 빗방울이 /
찌든 영혼 말갛게 헹굼질이라"는 정화와 재탄생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빗방울'은 영혼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도구로, 자연을 통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찌든 영혼'은 현대인의 피로와 고뇌를 대변하며, 이를 자연의 순수한 힘으로 깨끗이 씻어내는 과정을 묘사했다.
이 시는 자연, 인간, 그리고 삶의 순간을 조화롭게 엮어낸다.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풍경에서 삶의 본질적 가치를 발견하며, 독자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느끼게 한다.
요컨대, 백영호 시인의 이 시는 섬세한 시적 언어와 감각으로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독자에게 위안과 감동을 선사하며, 평범한 일상 속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독자와 함께 시적 사유의 노정을 걸어 나간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