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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08. 2024

청람루(晴嵐樓)

김왕식









           청람루(晴嵐樓)





                         안최호





장심리라 불릴 만큼 계곡 깊은 곳,

그곳에 자리 잡은 청람루여.

계곡물 흘러내리는 산자락 품에

담담히 틀을 잡은 청람루여.


'청람'이라 이름하고,

그윽한 나무 향에 취해

잠시 머물러 쉬어가니

마음 또한 고요하구나.


오랜 세월 이름 없이

꽃잎을 날리며 하늘을 우러러,

꼿꼿이 서서 외쳤던 소리봉마저

청람루 품에 안겨 쉰다 하니.


장심리를 묵묵히 지켜온

늠름한 수문장 또한

청람루 아래 잠시 쉼을 얻으리라.


수백 년을 이어온 장심리의 역사가

청람루에 새겨지고,

나무마다 옷깃을 여미며

이 땅을 감싸 안는다.


장재울을 돌아 떠나는 나그네도

청람루의 석양빛 속

화폭 같은 한 점 그림 되어

그곳에 머물리라.






             청람루(晴嵐樓)








                                    김왕식




곤지암 장심리의 깊고 고요한 산자락, 소리봉 아래에는 조용히 자연을 품은 청람루가 있다. 그곳은 바람이 지나며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곳이고, 사람의 손길보다도 하늘의 손길이 더 깊게 닿아 있는 자리다. 밤하늘에 초승달이 큰 바위에 비스듬히 걸려 청람루를 비추면, 마치 하늘도 이 이름을 사랑하는 듯 느껴진다.


안최호, 그는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 땅의 고요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모습은 소박하지만 숭고하다. 장심리 계곡의 소리봉이 그를 품었고, 그는 그 품 안에 움막 하나를 지었다. 그 움막은 작지만 따뜻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짓고, 함께 살아가는 그곳에는 욕심 없는 삶의 향기가 스며 있다.


어제 나는 그의 소박한 삶의 터전을 ‘청람루’라 이름 지었다. 갤 청(晴), 산아지랑이 람(嵐), 누각 루(樓). 맑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로 피어오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소리봉 아래 흘러내린 계곡물이 청람루를 스쳐 흐르고, 골짜기마다 맑고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의 이름이 하늘까지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이름을 들은 그는 깊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이곳의 모든 것을 품은 듯 넉넉했다.


나는 문득 그와 함께 이 청람루에서 살아갈 날들을 그려본다. 서너 평 남짓한 초려삼간을 지어 나란히 두고, 안최호와 소박한 삶을 공유할 생각이다. 아침이면 소리봉을 따라 내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계곡물의 여울지는 소리에 마음을 씻는다. 저녁에는 장심리 마을 너머 펼쳐진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다. 그 노을빛은 찬란한 듯, 또 슬며시 고요하다. 그 끝자락에는 마을의 항아리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연기마저도 부드럽게 하늘로 스며드는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저마다의 속도로 흘러간다.


청람루에서의 삶은 욕심 없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목마를 때는 계곡물을 떠 마시고, 배고플 때는 산나물을 뜯어 조촐한 밥상을 차린다. 여기에는 화려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소박함 속에는 따스함과 풍요로움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청람루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을 노래하며 살 것이다.


안최호와 나, 우리는 이미 이곳에 닿아 있다. 청람루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맺는 약속이며, 그 약속 속에서 새롭게 열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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