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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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품은 삶
삶은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다. 봄의 새싹이 움트는 순간 이미 가을의 낙엽을 예고하듯, 우리의 숨결 또한 언젠가 멈출 것을 알고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적이 아니다. 그것은 한계를 부여하고, 유한함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찾아내도록 이끄는 또 다른 스승이다.
저녁노을이 지는 순간, 태양은 사라지지만 하늘은 빛으로 물든다. 죽음도 이와 같다. 우리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생의 흔적은 사랑과 기억으로 남는다. 과거의 어느 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느꼈던 아픔은 비로소 죽음이 삶을 얼마나 귀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했다. 그 아픔 속에서 나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날들이 있어 떠나간 자도, 남아 있는 나도 온전히 살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충만히 살아내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길 위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서로를 격려하며 걷는다. 길가의 꽃 한 송이도, 저녁의 노을도,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도, 모두가 한 번뿐인 순간들이다. 죽음이 있기에 그 모든 순간이 빛난다.
삶은 죽음과 함께 완성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다.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배처럼, 삶은 고요하고 단단한 항구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항구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남긴 모든 흔적은 또 다른 삶의 씨앗이 될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인도함을 알기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삶을 걸을 수 있다. 죽음을 품은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