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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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고 삭이는 삶
분노는 때로 삶의 불씨다. 억울함이 불어오는 바람에 활활 타오르다가도,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사그라지는 그 불씨. 그러나 그 불길을 참고 삭이는 일은 단순히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손바닥으로 감싸 안듯이, 내 안의 불길을 다독이는 일이다.
화는 본능적으로 올라온다.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아니면 그냥 이유 없이 북받쳐 오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성난 바다처럼 요동친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깨지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삭이는 일은, 그 바다 위에 배 한 척 띄우는 일과도 같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파도는 여전히 높지만, 배는 천천히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삭이는 삶은 단순한 참음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성찰의 과정이다. “왜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마음속 억울함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삭여낸 분노는 강한 에너지가 되어, 더 깊고 넓은 이해로 변화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넘어서, 타인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삭이는 것이 늘 쉽다는 말은 아니다. 삭이는 과정은 가슴에 돌멩이를 하나씩 쌓는 것처럼 무겁다. 그러나 그 돌멩이들은 결국 나를 단단히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언젠가 한 순간, 삭였던 분노가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삭인다는 것은 분노의 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 불을 조용히 내 안에서 연료 삼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불은 언젠가 작은 등불이 되어, 나와 타인을 비출 것이다. 그러니 삭이는 삶이 결코 패배가 아닌, 승리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