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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1. 2024

홍시의 비밀 ㅡ  이오장 시인

김왕식







                     홍시의 비밀



                                    시인 이오장




하나밖에 없는 홍시
그 밑에 누워 입을 벌리라고
어느 원로 정치인이 말했습니다
김나무에 바람이 몰아치면
달콤한 홍시가 입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알려준다면서
귀에 대고 소곤거렸습니다
속는 것 같아 믿지 않았지만
맨바닥에 누워 바라보니
여러 사람이 그러고 있었습니다
홍시는 자꾸 커져 하늘을 가득 채우고
빈틈없는 달콤함이 밀려들었습니다
하늘인지 홍시인지 분간되지 않아
입을 그만큼 벌려야 했습니다
점점 나는 사라지고 홍시가 되어
감나무로 변했습니다
두둥실 떠올라 내려다보니
세상은 온통 홍시였습니다
입 벌리지 않아도 어디든 가득 찬 홍시
사람들 입을 채웠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흙탕물이 덮쳐 흘러
먹었던 홍시가 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진 악취에
사람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싸우다가
감나무가 부러져 넘어졌습니다
일시에 사라진 홍시
휘둥그레 서로를 바라보다가
여기저기에 퍼질러 앉아 내지르는 헛웃음
하나의 홍시에 미쳐 날뛴 꿈이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오장 시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현실의 본질을 직시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홍시의 비밀"은 그 상징성에 있어 독자에게 깊은 사유와 통찰을 요구하며, 현대 사회의 집단적 맹목과 탐욕의 결과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작품 초반에서 “하나밖에 없는 홍시”는 유혹적인 달콤함으로 등장한다. 원로 정치인의 말과 사람들의 행동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약속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중의 모습을 투영한다. 감나무 아래 누워 홍시를 기다리는 행위는 현실에서의 수동성과 비판적 사고의 부재를 상징한다. 시인은 이를 통해 대중의 무기력함과 누군가가 조장한 환상에 기대는 심리를 드러낸다.

홍시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빈틈없는 달콤함이 밀려” 오는 장면은 황홀함이 극대화된 환상을 형상화한다. 이 순간, 시인은 독자를 함께 몰입하게 하지만, 이는 곧 개인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집단의 일부분으로 융합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점점 나는 사라지고 홍시가 되어 감나무로 변했다”는 문장은 개인과 집단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나타내며, 사회 속 인간의 몰개성화를 비판적으로 반영한다.

환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흙탕물이 덮쳐” 홍시의 달콤함은 토해지고, 채워졌던 공간은 악취로 변한다. 이는 탐욕과 집착으로 인한 결과가 얼마나 허망하며, 대중의 맹목적 동조가 결국 재앙으로 치닫는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시인은 여기에서 인간의 욕망과 그 파괴적 속성을 암시하며, 환상의 끝이 필연적으로 혼란과 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시의 마지막에서 “휘둥그레 서로를 바라보다가 내지르는 헛웃음”은 그동안 맹목적으로 달려왔던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허망한 순간을 형상화한다. 결국, 이는 대중이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이며, 환상이 주는 일시적인 달콤함과 실제 현실의 차이를 깨닫는 장면으로 읽힌다.

이오장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거짓된 이상과 집단적 맹신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홍시”는 단순한 유혹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욕망과 환상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날카로운 통찰과 생동감 있는 묘사로 인간의 본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를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작품의 미적 특징은 세밀한 비유와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에 있다. 환상의 달콤함에서 현실의 비참함으로의 전환은 독자의 감정과 상상을 극대화하며, 작품의 서사적 완성도를 높인다.

"홍시의 비밀"은 개인과 집단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친 사회적 풍자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모순을 고찰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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