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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서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말자

김왕식









닳아서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말자






낡은 연장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한 후에야 닳아 없어지며 그 생을 마감한다. 반면에 한쪽 구석에 방치된 채 녹이 슬어가는 연장은 자신의 역할을 잃고 쓸모를 다하지 못한 채 사라져 간다. 이 차이는 단순한 상태의 차이를 넘어,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진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종종 ‘닳아 없어지다’라는 말을 피하고 싶은 운명처럼 여긴다.
그것은 열심히 사용되고, 삶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다.
반면, 녹이 슬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역할을 잃고, 무력감 속에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닳아 없어지는 삶은 아쉬움이 있지만 후회는 없다. 녹슬어 가는 삶은 본연의 빛을 잃어버린 채 한탄만 남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은 닳아 없어지더라도 아름답다.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의 닳아지는 연필처럼,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주름진 손처럼, 자신을 던져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창업자의 노쇠한 몸처럼. 이 모든 것은 생의 가치와 의미를 증명한다.

녹슬어 가는 삶은 우리의 게으름과 방치에서 비롯된다. 내일로 미루는 목표들, 도전하지 않는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묻어둔 채 잊어버리는 순간들. 그렇게 녹이 슬어가는 시간은 후회와 아쉬움으로 덧칠되어 간다.

“닳아서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말자”는 우리에게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열정이 있다면 그것을 소진하며 살자. 쓰임새가 다해 사라질지언정, 빛을 잃어가며 녹슬고 싶지는 않다. 닳아 없어지는 삶은 누군가에게 유익을 남기고, 아름다운 흔적으로 기억된다. 반면 녹슬어 버린 삶은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우리의 생은 닳거나 녹슬거나 둘 중 하나로 끝난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생을 닳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끝이 있을지라도, 그 끝이 누군가에게 빛나는 흔적이 되도록.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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