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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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 문이 있는 곳에서
가만히 떠오르는 기억 속엔 창호지 문이 있다. 얇은 종이 한 장 너머로 들리던 웃음소리와 조심스레 숨죽이던 기척들. 족두리를 풀던 새 신부의 방에서 흘러나오던 설렘과 긴장감, 그리고 그 풍경을 엿보려는 동네 아줌씨들의 장난기 섞인 호기심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그 창호지 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무엇이 그 문 너머를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었을까. 차가운 겨울바람에 창호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종이의 얇음을 넘어선 두터운 이야기를 상상하곤 했다. 그 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사랑과 웃음, 때로는 눈물과 비밀이 묻어있는 공간이었다.
동네는 변했다.
아줌씨들의 손가락 끝에 묻어있던 침처럼 사소하고도 소소했던 그 풍경은 이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다. 그 기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족두리를 풀던 순간의 새 신부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손가락 끝으로 창호지 문을 뚫고 들여다보던 호기심 많은 아줌씨들은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고 계실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창호지 문이 있다. 얇은 종이가 덧대어진 문을 열 때마다 오래된 기억들이 스며든다. 창호지는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 같다. 그 문을 바라볼 때마다 지나간 시절의 따뜻함이 나를 감싸 안는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언젠가 새로운 이야기가 쌓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할머니들의 속삭임, 그 모든 것이 창호지 문 너머로 이어지길 바란다.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창호지를 바라보며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갈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