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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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씨!
다섯 살짜리 손녀딸 채이와 함께 드라이브를 떠난 날이었다. 손녀는 신이 나서 창밖을 보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할머니, 나무가 막 춤춘다! 구름도 춤추네!”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비롭고, 모든 순간이 특별한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렇게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곧 경산 IC가 나옵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오자마자, 뒷좌석에서 채이가 갑자기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다.
"할머니, 전화기가 자꾸 나쁜 말 해요."
"어머, 무슨 말인데 그래?"
"아이씨래요. 그거 나쁜 말이잖아요."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아이의 순수한 오해가 어찌나 귀엽던지. 하지만 웃음을 참으며 정색한 척 물었다.
"그래? 전화기가 뭐라고 했는데?"
"할머니, 방금도 '아이씨 나옵니다'~ 이랬어요!"
아, 이럴 줄이야. 채이가 오해한 그 '아이씨'는 바로 ‘경산 IC’였다. 아이는 평소 어른들 사이에서 우연히 들었을 욕설과 '아이씨'를 연관 지어버린 것이다.
"채이야, 그거 나쁜 말 아니야. 전화기가 말한 건 '경산 IC'야. IC는 고속도로 나가는 길이라는 뜻이야."
채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럼 전화기는 나쁜 말 안 한 거네?"
"응, 안 했어. 착한 전화기야."
손녀의 순수한 눈빛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아이의 세계는 얼마나 단순하고도 깨끗한가. 그저 ‘아이씨’라는 발음을 듣고도 나쁜 말을 걱정하는 이 맑음이라니.
그 순간, 채이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할머니! 다음엔 전화기한테 경산 말고 다른 길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저는 나쁜 말 같은 거 안 듣고 싶어요."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운전을 멈출 뻔했다.
아이의 귀여운 오해는 하루 종일 우리를 웃게 했다. 세상은 이렇게 작은 오해와 오히려 그로 인해 피어나는 순수함 덕에 조금 더 따뜻해지는 것 같다. 채이 덕분에 IC 하나에도 웃음꽃이 핀 하루였다.
“채이야, 다음에 경산 말고 서울 IC로 가자. 그건 나쁜 말 같지 않지?”
“응, 서울은 좋아요!”
손녀는 정말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나는 아이의 말속에서 삶의 또 다른 재미를 배웠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