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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 속의 온천

김왕식









설원 속의 온천





혹한의 날들이 이어진다.
밤새 눈은 쉬지 않고 내렸다. 세상은 하얗게 덮여 설원으로 변했고, 숨조차 하얗게 얼어붙는 아침이 되었다. 고요하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침묵. 이곳은 깊은 산속, 길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외딴곳이다.

그 속에 자리한 작은 노천탕. 눈길을 헤치며 온천으로 향한다. 발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눈 소리가 낯설지 않지만, 오늘은 유독 선명하다. 눈보라가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려앉는다.

뜨거운 물이 담긴 온천에 몸을 담그는 순간, 세상이 둘로 나뉜다. 허리 아래는 녹아드는 듯한 온기, 허리 위는 매서운 칼바람의 차가움. 얼굴은 겨울의 세찬 바람에 베이는 듯하다. 눈발이 쉼 없이 날려 눈썹 끝에, 볼에, 입술에 하얗게 내려앉는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흩날리는 눈이 머리카락에 내려앉아 이내 녹아버린다.

"추워…" 이마저도 혼잣말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손끝이 떨리고, 이가 부딪혀 온기를 찾으려 하지만, 이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잠겨 있다. 묘한 기분이다. 뜨거운 물과 영하의 공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곳. 이 어긋난 온도의 대비는 정신마저 어지럽힌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회색 구름 사이에서 작은 틈으로 흰 눈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눈은 무언가를 지우고 덮어버리려는 듯 끈질기다.
그 설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눈을 감는다. 눈밭에 날리는 바람 소리, 온천의 잔잔한 물결 소리가 어우러져 또 다른 고요를 만든다.

산과 눈, 바람과 물, 차가움과 따뜻함.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얽혀 몸을 감싼다. 추위 속에서 온기를 느끼고, 고립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 겨울은 매서운 계절이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더 깊은 평온이 깃든다.

눈길을 떠난 온천의 물 위에 하얀 입김을 내쉬어 본다. 조금씩 고요한 평화가 번져나간다.





설원 속 노천탕




밤새 눈이 내렸다,
세상은 하얀 숨결로 덮이고
산 깊은 곳, 고요가 깃든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니
허리 아래는 온기, 위는 칼바람.
눈발이 얼굴을 베어내고
이가 부딪힌다, 떨린다,
물결은 나직이 속삭인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어우러져
이 겨울, 평온은 깊어진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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