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17. 2024
우연히 돌린
TV속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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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몽돌과 유리조각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발밑에 깔린 몽돌이 눈에 들어온다. 파도에 씻기고 깎인 둥근돌들이 반질반질 빛나며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다. 그러나 그 속에 유독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것이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버려진, 이제는 더 이상 쓰임이 없는 유리 조각이다. 유리병은 깨지고 흐트러져 바다를 떠다니며 수없이 부서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친 물살과 모래에 닳아 가장자리가 매끄러워져도 그 속엔 인간이 남긴 흔적이 여전히 아프다.
한 겨울,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남해안의 몽돌밭을 한 가족이 걷는다. 어머니와 세 아이들은 가끔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를 집어 든다. 얼핏 보면 이들은 수석을 모으는 사람들 같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돌이 아닌 바다의 유리 조각들이다. 버려진 유리는 쓰레기라 불리지만, 이들은 이를 '자원'이라 여긴다. 위험할 수 있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은 이제 그들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가족은 조심스레 유리를 모아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캔버스 화판을 꺼내 든다. 바닷물에 깎여 무뎌진 유리 조각은 어느새 예술의 소재가 된다. 아이들은 유리 조각을 꽃잎처럼 배치하고 어머니는 줄기와 나무를 이어 붙인다. 비록 쓰레기로 버려졌지만, 그것은 하나의 생명처럼 다시 태어난다. 꽃과 나무가 활짝 핀 작품은 환경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이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은 단순한 재생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쓰임과 버려짐의 경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삶이다.
환경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바다에 버려진 유리병이나 플라스틱은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요소다. 바다 생물은 이를 먹이로 착각해 삼키고, 조류는 날카로운 조각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유리 한 조각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이 소비한 물건들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 가족이 유리 조각을 모아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작은 실천이자 메시지다. 쓰레기를 자원으로 바꾼 그들의 손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버린 것은 정말 쓸모없는 것일까?"
예술은 쓰레기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지만, 그 근본에는 경각심이 자리하고 있다. 버려진 유리 조각이 아름다운 꽃으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죄를 예술이라는 방법으로 반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모인다면 세상은 더 이상 쓰레기로 넘쳐나지 않을 것이다.
한겨울 바닷가에서 유리 조각을 줍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환경 정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와의 화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향한 한 걸음이다. 쓰레기 재생의 예술 작품은 결과물이 아닌 시작이다. 우리도 이처럼 무심코 버린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환경을 살리는 작은 실천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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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유리
칼바람 부는 몽돌밭
엄마와 아이들, 허리 굽혀 줍는다
반짝이는 조각들
바다에 버려진 시간의 잔해
모래에 닳은 유리는 꽃잎이 되고
손끝에 얹힌 쓰레기는 나무가 된다
파도가 깎은 아픔을 이어 붙여
캔버스 위에 새 생명을 심는다
쓰레기 아닌 자원이 되어
꽃 피우는 바다의 눈물
버려진 것들은 말한다
"우리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