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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풍경의 노래 ㅡ 문희 시인 시 읽고 적다

김왕식








달빛과 풍경의 노래
ㅡ 문희 시인 시 읽고 적다






겨울밤, 불을 때러 나섰다. 온 세상은 고요하고 차가운 숨결만이 어둠 속을 가로질렀다. 불을 지피고 나서 마당에 서니 바람이 옷깃을 휘감는다. 손바닥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어보니, 둥근달이 저 홀로 환히 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달빛은 세상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제 할 일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마당은 텅 비어 있었고, 그 무엇도 달을 반기지 않았다. 바람만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뿐.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문득 달빛의 속삭임을 들었다. “노래 한 곡조 뽑아보라.” 타령이든 노래든, 누구든지 이 밤을 뚫어줄 목소리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대신 바람이 풍경을 흔들었다.

“뎅그렁, 뎅그렁…”

풍경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르자, 마당은 곧 노래가 되었다. 달빛이 내려앉고 풍경이 울려 퍼지는 이 밤, 목소리 없는 노래가 시작된 것이다. 풍경은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가볍게 울렸고, 달빛은 그 소리에 홀려 말없이 어둠을 비추었다.

더 이상 노래는 필요 없었다. 달빛이 이미 이 밤의 노래였고, 풍경이 그 반주였다. 그저 이렇게 서 있기만 해도 충분했다. 나의 조용한 마음이 달빛과 풍경의 노래에 녹아들었다. 말없는 달과 고요한 바람,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비추는 풍경의 소리가 어두운 세상 어딘가를 감싸주고 있었다.

문득, 아궁이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떠올랐다. 저 불길처럼, 저 달빛처럼 오래도록 조용히 타오를 수 있기를. 방으로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달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던 달이,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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