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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옥 작가의 '겨울의 찬가讚歌'를 청람 평하다

김왕식








겨울의 찬가讚歌








박건옥 작가





하늘은 흐려 태양은 숨고

눈이 올 것 같이 사위가 조용하다.


뒷동산 밑으로 늘어선 마을에 긴 띠처럼 병풍을 치고 하늘을 오르는 쥐똥나무 숲.


긴 밤을 힘겹게 보낸 것 같이

찬서리는 논 위의 지푸라기에 달라붙어 오싹한 한기를 띄우고 햇살에 영롱히 반짝거린다.


눈을 들어 개울 건너 들녘을

보니 논 사이로 굽이굽이 뻗어간 들길에 우뚝하니 키 큰 소나무가 외로워 보인다.


추운 겨울은 계절이 품는

묘미妙味로 가득하다.

스산한 공허에 세상은 잠잠하고 새들은 떼 지어 풀숲을 헤치고

희뿌연 하늘 위로 부는 바람은

가슴에 흐르는 여울처럼 비상하는 새처럼 겨울 한기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한다.


이 겨울이 짙어만 간다.

산을 덮은 무수한 병사들은

군복을 벗고 내한耐寒 훈련이 한창이다.

잎은 떨구고 헐벗은 가지만을 하늘을 찌르니 그 기상氣象이 늠름하다.


겨울의 추위는 우리에게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긴 여름을 보내고 단풍철을 지나

태양을 돌아

어제의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의 친구다.


이 겨울은 토방에 장작불을

지펴 정다운 친구들을 부르자. 세월의 연륜年輪이 얼굴에 가득한 초로初老의 동무들을 한데 모으자.

더 바랄 것도 없이 껄껄 웃는

호쾌豪快한 웃음을 들어보자.


물 건너 산을 오르는 오솔길 옆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오늘도 외롭다.

하늘 위를 떠가는 청둥오리 떼도 개울마다 얼음이 덮여

빈배를 움켜쥐고 날아다니니

겨울은 결단코 쉽지 않은 계절季節이다.


계곡谿谷을 흐르는 물길도 영하의 날씨에 흐름을 멎고

두꺼운 빙복氷服을 물 위에 뛰워 계곡은 고요가 있어 한낮의 겨울은 느리게 간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은 겨울의 고통苦痛

이려니 옛적 선비의 한스런

족적이다.

눈 오고 바람 부는 날 황량한 들길을 외로이 걸어 보라.

차가운 바람에 귓불이 얼고 차가워진 손을

덮이려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한낮의 겨울길을 걸어가 보라.

싸늘히 식어가는 발바닥 체온 그렇게 우리는 겨울로 갔다.

얇은 고무신 신고辛苦의 겨울길 걸어서 갔다.


도심에 뿌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다방의 창가에 앉은 나의 청춘을 회상해 본다. 느닷없이 귓가를 스치는 톰 존스의 딜라일라

를 듣던 까마득한 옛날을 소환召喚해 본다.


이 겨울은 찬연한 생이다.

바람 불고 눈이 내려 거리는

스산하지만 겨울은 계절의

끝자락이다.

겨울은 꿈속을 거니는 오후의 단잠이다.

이 겨울에 책상에 앉아 오랫적 역사歷史를 읽으라.

추운 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은 단구短軀의 나폴레옹을 떠올리면 겨울은 용맹정진의 찬가를 부르며 보무도

당당히 앞으로 간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건옥의 시 '겨울의 찬가'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 속에서 삶의 본질적 가치와 철학적 통찰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겨울의 혹독함을 단순히 계절적 어려움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인간의 성장과 내적 성찰의 의미를 탐구한다. 자연과 인간이 맞물려 있는 세계 속에서 겨울은 단순한 추위의 시간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계절로 승화된다.


작품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삶의 교훈으로 끌어올리는 작가의 가치철학을 명확히 드러낸다. "겨울의 추위는 우리에게는 반면교사다"라는 대목은 겨울의 혹독함을 삶의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나타낸다. 이는 단순한 계절적 관찰을 넘어, 인간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를 상기시킨다.

특히 "겨울은 계절의 끝자락이다"라는 표현은 겨울을 삶의 마무리로만 보는 시각이 아니라,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긍정적 관점을 담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철학적 태도는 독자로 자연과 삶의 교차점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작품의 미적 성취는 세밀한 묘사와 상징적 이미지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찬서리는 논 위의 지푸라기에 달라붙어 오싹한 한기를 띄우고 햇살에 영롱히 반짝거린다”라는 구절은 겨울의 냉혹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작가의 시적 감각을 보여준다.

또한 "산을 덮은 무수한 병사들은 군복을 벗고 내한 훈련이 한창이다"라는 대목은 겨울의 나목(裸木)을 군사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계절의 역동적 에너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로 겨울을 단순히 춥고 스산한 계절로 인식하는 대신,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계절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작품은 겨울 풍경에 대한 묘사에서 출발해, 개인적 회상과 철학적 성찰로 나아가는 점진적 확장을 보인다. 겨울의 고독과 추위를 묘사하면서도 이를 단순한 부정적 경험이 아닌, 성장과 성찰의 계기로 승화시킨다. 특히 마지막에 "겨울은 용맹정진의 찬가를 부르며 보무도 당당히 앞으로 간다"라는 구절은 겨울이 인간에게 주는 용기와 결단을 긍정적으로 노래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옥에 티로

작품 중반부, 개인적 회상ㅡ다방에서 청춘을 회상하는 대목ㅡ이 철학적 메시지와의 연결이 약간 느슨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작품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지만, 철학적 통찰과의 유기적 연결을 조금 더 강화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과거의 회상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현재 삶과의 연관성을 명확히 드러낸다면 작품의 통일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또한,

"낙락장송"이나 "겨울의 고통"과 같은 표현이 작품 곳곳에서 반복되어 약간의 중복감이 든다. 이러한 표현을 다양화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도입한다면 시의 미적 풍요로움이 더해질 것이다.

개인적 회상 부분에서, 겨울 속에서 느낀 삶의 성찰이나 작가 자신이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좋겠다.

“다방 창가에서 바라본 함박눈은 내 청춘의 고난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했다. 그때 느꼈던 차디찬 바람은 오늘의 나를 단련시키는 동반자와 같았다.”


요컨대, 겨울의 찬가는 단순한 계절적 묘사에서 벗어나, 겨울이라는 자연 현상을 삶의 본질적 철학과 연결시킨 작품이다. 작가의 치밀한 관찰력과 시적 상상력이 어우러져 독자로 계절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다만 일부 개인적 회상의 연결성이나 표현의 반복성을 보완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자리할 것이다. 이 작품은 삶의 고난과 성찰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려는 작가의 깊은 미의식과 가치철학을 명징明澄하게 드러내는 훌륭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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