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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1. 2024

태극기와 촛불

김왕식









                       태극기와 촛불



오늘은
동짓달 스무 하루다.
엄동설한이다.
게다가
눈발이 휘날리고
영하의 온도이다.

시방
이 순간 광화문과 여의도에
수만 명이 운집하여
태극기와 촛불을 흔들며
목청껏 각자의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태극기와 촛불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이며, 그 자체로 국가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나타낸다. 촛불은 주로 평화적인 시위를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촛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목소리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두 가지는 분명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국민의 목소리와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태극기와 촛불은 정치적 양극화를 상징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태극기는 오랜 기간 동안 보수 진영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2010년대 이후부터 더욱 두드러졌는데, 특히 특정 정치적 이슈와 연관되면서 태극기는 보수 집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반면 촛불은 진보적 시민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2002년 효순·미선 사건 촛불 집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 등을 통해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태극기와 촛불은 서로 다른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두 상징물이 정치적 진영 논리에 갇히면서, 그 본래의 숭고한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자랑스러운 국기이며, 촛불은 평화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적인 자리에서조차 태극기와 촛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단순히 태극기를 든다는 것이 특정 진영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고, 촛불에 대한 언급조차 정치적 의도를 가진 발언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대화의 자유를 제한하며, 국민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태극기는 주로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은 여의도에서 볼 수 있다는 현실은 상징물의 사용이 얼마나 경직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태극기를 들고 여의도에서 촛불과 함께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어우러지는 모습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정치적 상징물이 물리적 공간까지도 분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공간적 분리는 상징물 간의 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양측의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결국, 태극기와 촛불이 다시 본래의 숭고한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특정 진영의 도구로 사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태극기는 모든 국민의 상징물이며, 촛불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의 공통된 가치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촛불을 든 시민들이 태극기의 가치를 공유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 간의 소통과 화합을 촉진하고, 상징물이 정치적 도구로만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언제쯤 우리는 태극기를 들고 촛불 잔치를 함께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상징물의 결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 모두가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평화롭게 소통하고, 상호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시작을 뜻한다. 광화문과 여의도가 하나로 연결되고, 태극기와 촛불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비로소 국민 모두가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국민의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가능하다. 태극기와 촛불이 다시 한 번 숭고한 상징으로 자리 잡는 날을 기대하며, 그날이 올 때까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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