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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3. 2024

화롯가의 추억과 따뜻한 담소

김왕식








              화롯가의 추억과 따뜻한 담소





어릴 적 기억 속 가장 따뜻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늘 화롯가가 떠오른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집 밖을 쓸고 다니는 날, 온 가족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군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나누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채운다. 뜨겁게 익은 고구마를 껍질째 벗기던 손끝의 열기와, 동치미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켤 때 느껴졌던 시원함이 어우러진 그 순간들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가족 간의 교감을 이루는 시간이었다.

화롯가는 단순한 난방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의 중심이었고, 정서적 연결의 매개체였다. 불꽃은 타닥거리며 빛과 온기를 제공했고, 그 곁에서 나눈 이야기는 겨울밤의 적막을 몰아냈다. 어떤 날은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호랑이가 나타나는 이야기부터 까치와 토끼가 주인공인 우화까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즐거웠다. 또 어떤 날은 아버지가 어릴 적 겪었던 추억을 들려주셨다. 그 시절의 고생스러운 삶이 고구마의 달콤한 맛과 어우러져 마음을 울리곤 했다.

그 시간에는 다툼도, 불평도 없었다. 화롯가를 둘러싼 자리에는 오직 웃음과 온화한 대화만이 가득했다. 가족들은 서로의 하루를 나누었고, 작은 일상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냈다. “오늘 장에서 사 온 배추가 참 싱싱하더라.”라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아버지는 “그 배추로 만든 김치가 기대되는구나.”라고 답하곤 했다. 그런 소소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었다.

현대의 삶은 이러한 순간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전기 난방이 보편화되면서 화롯가는 추억 속 물건이 되었고,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이 자리 잡으면서 식사 시간의 대화마저 줄어들고 있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느라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점점 희귀해졌다. 많은 가정에서 함께하는 식사조차도 빠르게 끝내는 하나의 과정으로 전락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더욱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화롯가에서 나누던 시간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곳에서 나누던 담소는 단순히 말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시간이었다. 군고구마와 동치미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과 관심이 담긴 매개체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화롯가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되찾는 것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며,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는 시간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러한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식탁에 둘러앉아 눈을 맞추며 소소한 이야기라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대화 속에서 서로의 기쁨을 공유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족 간의 진정한 교감이 될 것이다.

화롯가의 추억은 우리에게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바쁜 삶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와 사랑이 가득한 식사 시간을 만들어보자. 그것은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일상의 따스함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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