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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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산책길에서 찾는 나만의 시간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해야 할 일과 채워야 할 목표들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틈조차 없을 때가 많다. 그럴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 스스로를 마주하고,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이 삶의 균형을 되찾아준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해진 공기가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이 계절, 나는 따뜻한 스키프를 걸치고 고즈넉한 산책길로 향한다. 두꺼운 외투에 모자까지 챙겨 입으면 바람마저 더 이상 날 방해할 수 없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고요한 산책길을 걷다 보면 비로소 내 안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진다.
산책길은 내게 단순히 발을 옮기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 나 자신을 연결해 주는 통로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그리고 나직이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려준다. 이런 자연의 작은 목소리들이 나의 내면을 깨우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을 조용히 불러내는 것이다.
산책을 하며 명상에 잠기다 보면 일상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바쁘게 달리기만 하느라 놓쳤던 소중한 순간들, 중요하지만 간과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모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이 사색의 시간은 마치 먼지가 쌓인 거울을 닦아내듯 내 삶을 맑게 비춰준다.
혼자 걷는 산책길은 고독하지 않다. 오히려 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고,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지 깨닫는다. 때로는 억지로 길을 내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바쁠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너질 수 있는 지점을 막아주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조언이다. 고즈넉한 산책길에서의 명상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이끌어주는 치유의 순간이다.
오늘도 나는 산책길로 나선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담기는 나만의 속도와 호흡이 내 삶의 균형을 되찾아주길 바라며. 그렇게 걸으며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