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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피어난 봄

김왕식








손바닥에 피어난 봄






겨울이 깊어지면, 세상 곳곳이 얼어붙는다. 그 차가운 풍경 속, 길가에 버려진 화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금이 간 화분 속에는 담배꽁초 서너 개비가 거꾸로 박혀 있었다. 그 틈새에서 기적처럼 연녹색 움이 돋아났다. 너무도 가녀려 바람 한 줄기에도 꺾일 듯했지만, 그 작은 생명은 차가운 흙 위에서 몸을 세우고 있었다. 무심한 세상의 손길에 눌려도, 움은 그 자리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 화분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손은 늘 거칠었다. 농사일로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은 나무껍질처럼 투박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손길이 닿는 곳엔 늘 온기가 감돌았다. 찢어진 옷, 흙 묻은 채소, 병든 병아리까지, 할머니의 손이 닿으면 무엇이든 새 생명을 얻는 듯했다. 할머니는 버려진 것,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았다.

죽었다고 여겨졌던 나무에 물을 주고, 가지를 다듬으며 “이 녀석도 다시 푸르러질 거야” 하시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리고 정말로, 나무는 다시 잎을 틔웠다. 그 손끝에 깃든 사랑은 마치 연녹색 움이 차가운 틈새에서 돋아나는 것과 같았다. 세상은 손쉽게 버리고 외면했지만, 할머니의 손은 그 작은 생명을 품고 살려냈다.

화분 속 움이 자라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깨달았다. 그 손은 단순한 노동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소외된 것들, 외면받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연대와 사랑이었다. 그 손은 겨울 같은 세상에서 봄을 품는 손이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기적을 만들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 그 화분은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하다. 손바닥에 스며드는 봄처럼, 세상의 차가움을 녹이는 손길이. 할머니의 손이 만들어낸 생명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봄의 손길이 될 수 있기를.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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