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인도에 책을 가지고 간다는 것

김왕식








무인도에 책을 가지고 간다는 것





혹자는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책 한 권을 고르라고 말한다. 그 질문은 단순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고독, 그리고 상상력이 담겨 있다. 어느 중견 소설가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선택한 일화처럼, 사람마다 책을 고르는 기준과 이유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또 다른 의문을 던진다. 무인도에 정말 책이 필요할까?

무인도란 곧 고립의 공간이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책 한 권은 위로와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책 속의 이야기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홀로 있음에도 다른 사람과 교감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는 가정 자체를 전복해 보면 어떨까?

책이 아닌 자연 그 자체가 책이라면? 무인도에서 바람은 시가 되고, 파도는 소설이 된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음악이고, 떠오르는 해는 철학의 한 페이지다. 굳이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들고 가지 않아도, 자연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우리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독서가 아닐까?

한 켠, 가져갈 책 대신 그곳에서 직접 책을 쓴다는 것이다. 손으로 모래를 적어가며 글을 쓰고, 나무껍질에 이야기를 새기며, 고독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책이란 단지 읽는 대상일 뿐 아니라,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무인도의 고독은 인간을 작가로 만든다.

무인도에 가져갈 책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갈지가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삶을 만들어 갈지다.
무인도는 고립이 아니라 또 다른 발견의 기회다. 우리가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책을 고르는 대신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여정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 한 권이 아니라,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