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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 ㅡ 시인 김언중

김왕식









고목나무



시인 김언중




모진 바람 세차게 할퀴고 간
황량한 포도밭에
꽁꽁 얼어붙은 가시 달빛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푸르렀던 잎새의 추억도
익어가길 바라던
풋사랑 상처도
이제는 기억의 저편

선인장에 핀
개나리 꽃을 보았는가

저물어 가는
황혼의 끝자락에서
길 찾아 떠나는 철새들의
쉼터이고 싶다

늙은 쥐의 사랑도
아낌없이 나눠 주고 싶다

다 주고 떠나련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언중 시인의 '고목나무'는 생의 말미에서 느끼는 삶의 덧없음과 그럼에도 타인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깊은 인간애를 담고 있다. 시인은 거센 바람에 휩쓸린 황량한 포도밭과 얼어붙은 가시 위에 내려앉는 달빛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인생의 고난과 상처를 담담히 마주한다. 이는 자연과 인생의 순환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해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푸르렀던 잎새와 풋사랑의 상처는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났지만, 시인은 그 자리를 새로운 생명과 희망으로 채운다. '선인장에 핀 개나리 꽃'이라는 구절은 척박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가능성과 의지를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시인은 황혼의 끝자락에서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자 한다. 이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타인에게 안식처가 되고자 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잘 드러낸다.
나아가 '늙은 쥐의 사랑도 아낌없이 나눠 주고 싶다'는 표현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포용적이고 겸손한 자세를 담고 있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고 떠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시를 맺으며,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고 숭고하게 승화시킨다.

김언중 시인의 작품 세계는 자연과 인생의 유한함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나누고자 하는 인간애로 가득하다. 이는 거칠고 황량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과 온기를 잃지 않는 시적 태도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시인은 스스로를 고목나무에 비유하며, 비록 잎을 모두 잃었지만 여전히 철새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작은 존재에게도 사랑을 베풀고자 한다. 이러한 삶의 철학은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겠다는 마지막 다짐 속에서 더욱 빛난다.

요컨대, '고목나무'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타인을 품고 사랑을 나누려는 시인의 깊은 통찰과 아름다운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김언중 시인의 시에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랑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이러한 미의식은 독자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와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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