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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두 자루

김왕식




낫 두 자루





안봉근







고향으로 돌아온 후, 나는 숫돌과 낫 두 자루를 샀다.

농사짓는 이들에게 풀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막상 그 전쟁이 시작되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싸움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히 자라는 풀들을 바라보노라면, 농부들이 땅이 상하는 줄 알면서도 독한 제초제를 뿌릴 수밖에 없는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지만, 작은 앞마당의 잔디 역시 풀과의 전쟁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제초제를 뿌리는 일은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잔디 깎는 기계를 들이는 것도 마당의 크기를 생각하면 과한 듯싶어 망설여졌다.

경험 많은 친구는 돌 받침대와 자갈을 깔면 편하다고 했지만, 잔디의 푸르름과 고요함이 사라질 것 같아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땅을 귀히 여기던 어르신들은 마당을 밭으로 만들어 콩이나 상추를 심으라 권했지만, 시골살이가 처음인 아내에게 농사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앞마당의 잔디와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매일 낫 두 자루를 정성껏 갈아 힘차게 자라는 잔디를 잘라냈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날을 곱게 다듬어 예리해진 낫은 점점 손에 익었고, 어느새 약간의 재미까지 느껴졌다.

세 달쯤 지나자 어릴 적 부모님을 도우며 꼴을 베던 중학생 시절의 손놀림이 되살아났다.


단옷날이 되었다.

나는 친구의 도움을 사양하고, 시끄러운 예초기 대신 조용한 낫으로 조심스레 벌초를 했다.

주변 사람들은 믿지 못했지만, 나는 낫질의 묵직한 울림과 함께 조용한 자연의 숨결을 느꼈다.

이제 낫을 갈고 잔디를 다듬는 일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마치 매일 이발하듯 다듬어진 상큼한 앞마당은, 나의 하루를 싱그럽게 열어준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봉근 작가의 에세이 '낫 두 자루'는 일상 속 작은 선택과 실천을 통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깊은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손수 낫을 갈아 잔디를 깎는 작가의 모습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자연과의 공존을 실천하는 철학적 행위로 읽힌다. 제초제나 기계와 같은 편리함을 거부하고, 낫이라는 전통적 도구를 선택한 것은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 흐름을 존중하며 살아가려는 작가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이는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잊혀가는 느림의 미학과 노동의 가치를 일깨운다.


작가는 '풀과의 전쟁'이라는 일상적인 문제를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의 손과 땀으로 풀을 다듬으며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낫을 다듬고 풀을 베는 과정은 단순한 반복 노동이 아닌, 자연과 자신을 조율하는 성찰의 시간이자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작가의 삶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작품의 미의식은 섬세하고 담백하다. 작가는 일상의 풍경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자연의 숨결과 소소한 행복을 깊이 있게 녹여낸다. 푸르른 잔디의 고요함, 날이 선 낫의 예리함, 손끝에서 전해지는 노동의 감각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울림을 준다. 이러한 서술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 삶의 본질과 여유로운 시간의 흐름을 곱씹게 만든다.


요컨대, '낫 두 자루'는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전하며, 편리함보다는 정성과 노력이 담긴 삶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안봉근 작가는 이러한 삶의 철학과 섬세한 미의식을 통해 독자에게 느림의 가치와 자연스러운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글을 완성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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