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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간 마음, 뿌리내린 삶

김왕식








흙으로 돌아간 마음, 뿌리내린 삶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온 김 씨는 오랜 도시 생활의 짐을 내려놓고 고요한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을 지었다. 남쪽으로 난 창으로 햇살이 드리우고, 창밖에는 초록 잔디가 깔린 정원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는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따뜻한 차 한 잔에 마음을 씻었다. 틈이 나면 잔디 위에 놓인 파라솔 아래서 서울에서 찾아온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가 꿈꾸던 삶이었다. 도시의 회색빛 풍경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것. 고운 잔디밭을 기계로 손쉽게 다듬으며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일은 그에게 더없는 만족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정원은 고향 사람들의 눈에 낯설게 비쳤다.

대대로 흙을 일구고 땀 흘려 농사짓던 이웃들에게 그 잔디밭은 한없이 이질적이었다. 계절마다 작물이 자라나야 할 밭에 잔디가 고르게 깔리고, 파라솔 아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풍경은 마을의 일상과 닿아있지 않았다. 고단한 농번기에도 손에 흙을 묻히는 일이 익숙한 이들에게 그의 잔디밭은 삶과 동떨어진 허울 좋은 풍경처럼 보였다.

그들과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마을 잔치에서도 낯선 시선이 느껴졌고, 길을 지나치며 마주쳐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 씨는 어느 순간 자신이 고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결단했다. 정성 들여 가꾼 잔디밭을 삽으로 뒤엎었다. 기계 대신 자신의 손으로 흙을 고르고, 땀으로 밭을 일구었다. 상추, 고추, 쑥갓을 심고 물을 주었다. 굽은 허리를 일으킬 때마다 땅에서 올라오는 숨결을 느꼈다. 흙냄새가 손끝에 스미고, 작은 싹이 흙을 뚫고 나올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물들어갔다.

어느 날, 지나가던 마을 어르신이 그의 밭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야 우리 사람이 된 것 같네."

짧은 말이었지만, 오랜 벽이 허물어지는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김 씨는 서툴지만 성실하게 밭을 일구며 고향 사람들과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마을 어귀에서 인사를 건네고, 직접 기른 상추를 한 줌 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작은 나눔이 이어지고, 잊혔던 온기가 돌아왔다.

정원을 가꾸던 시간도 소중했지만, 땅을 일구며 마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지금은 또 다른 풍요였다. 그는 도시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흙과 땀의 무게 속에서 진짜 쉼을 찾았다.

삶은 언제나 흐르고 변화한다. 편안함을 좇던 그의 삶은 이제 사람과 사람이 잇는 따뜻한 정서로 채워졌다. 잔디밭을 갈아엎은 그의 결단은 단순히 땅의 변화를 넘어, 마음의 벽을 허무는 여정이었다.

도시에서의 성공과 여유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마음의 온기다. 김 씨의 변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편리함에 안주하며 타인의 마음을 잊고 있진 않은가.

그는 말없이 흙을 일구며 그 답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는 것을.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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