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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하지 않는 마음을 기다리며

김왕식







귀가하지 않는 마음을 기다리며






늦은 밤, 불 꺼진 집 안에는 고요함이 깊이 내려앉는다. 창밖으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골목길을 물들이고, 그 길목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스쳐 지나간다. 대문 앞에 앉아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한 마음은 조용히 고개를 든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이내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들이 들어선다. 안도의 숨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공허함이 남아 있다. 이미 돌아온 이들을 바라보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시선이 머문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기다림의 대상은 누군가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였다는 사실을. 바쁘다는 핑계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마음은 늘 어디론가 떠나 있었다. 육신은 이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멀리 떠돌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 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쌓여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멀리 떠나 있었을까. 어떤 이유로 삶의 자리에서 멀어진 걸까. 언제부터였는지, 무슨 까닭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더 많은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던 발걸음이 있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 노력들이 쌓일수록 점차 마음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현실에 집중하지 못한 채 어디론가 향하고만 있었다.

골목길 모퉁이, 버스 정류장, 대문 앞. 어디에서든 불안한 마음은 서성거렸다. 돌아올 줄 모르는 마음을 기다리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희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 기다림은 누구를 위한 것도,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향한 기다림이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현실 속에서 마주할 준비가 된 존재일까. 아니면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에 숨은 채 돌아오지 못하는 존재일까. 분명한 것은, 기다림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는 결국 마주해야 할 진짜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다림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멈춤이 아니다. 기다림은 돌아올 길을 찾는 과정이며, 잊고 있었던 자신을 되찾는 여정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저 문 앞에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에 나서야 한다. 어두운 골목길도, 적막한 새벽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스스로를 향한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서 마침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간다.

삶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일과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지라도,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자신이다. 매일같이 바쁘게 살아가는 속에서도 자신을 잊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쌓여 깊어진 마음이 어느 순간 길을 찾게 만든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삶의 한복판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진짜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기다림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돌아가기 위한 값진 과정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려온 자신을 마주하고, 비로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기다림은 의미가 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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