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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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실린 그리움
정용애
완도의 여름은 언제나 푸르렀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부터 동네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들었다. 칠팔 세쯤 되었을까, 그때의 나는 아침밥을 허겁지겁 먹고 갱변으로 달려갔다. 바다는 우리를 반기듯 잔잔했고, 바닷물은 따스하게 피부를 감쌌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서로 물을 튀기며 웃음꽃을 피웠다. 수영을 배우지도 않았지만,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바다와 친구가 되었다. 물살을 가르며 마음껏 헤엄치던 그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웠다.
오후가 되어 바닷물이 서서히 빠지면, 드러난 모래밭은 또 다른 놀이터가 되었다. 뜨거운 모래 위를 맨발로 달리며 숨이 차도록 뛰어놀았다. 미역을 따고, 고동을 주우며 작은 생명들과 교감했다. 방구쟁이 게를 잡을 땐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야 했다. 잘못하면 게의 집게에 손가락이 찝히기 일쑤였다. 그래도 겁내지 않았다. 그런 것도 다 놀이의 일부였다. 놀다 보면 손발은 소금기와 모래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마저도 신기하고 즐거웠다. 자연 속에서 몸으로 배우는 일들은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지만, 스스로 익혀갔다.
해가 땅끝마을 산봉우리에 걸려 붉게 물들 무렵이면, 하루가 저물어감을 느꼈다. 저녁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는 거적을 이고, 손에는 이부자리를 든 채 갱변 깨들 밭으로 향했다. 그곳은 어르신들의 쉼터이자 이야기가 피어나는 자리였다. 갱변 모래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았다. 어른들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꺼내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매, 그런 일이 있어부렀냐?"
"하하, 호호, 까르르!"
파도 소리에 맞춰 터지는 웃음소리는 밤하늘에 부서지는 별빛처럼 반짝였다. 아이였던 나는 어른들 틈에서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별들이 총총한 하늘 아래,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나라로 떠났다. 그 소리는 마치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와 모래를 적시고, 밤바람은 소금기 섞인 향기를 실어 나르며 어루만졌다. 그렇게 하루의 피로는 풀리고, 다음 날의 힘을 얻었다.
그때 그 시절, 동네 어르신들의 푸근한 모습, 파도 소리와 별빛 아래 나누던 이야기들, 그리고 바다와 함께한 순수한 놀이들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어느덧 그 어린아이는 고희를 훌쩍 넘겼고, 세월은 고향을 멀리하게 했지만, 마음 한편엔 언제나 그리움이 자리한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갱변의 모래밭이 떠오른다. 따스한 햇살 아래 뛰놀던 친구들의 웃음소리, 바닷바람에 실려온 소금기 냄새, 그리고 어르신들의 정겨운 이야기. 그 모든 풍경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고향 완도. 그곳은 나의 어린 시절이 깃든 따스한 품이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그곳을 떠올리며 위로를 얻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그곳에 머물 수 있다. 이제는 흘러간 세월이지만, 고향의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별빛은 변함없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이제는 그 바다를 바라보던 어르신들의 모습처럼,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스한 어른으로 남고 싶다. 어린 날의 내가 그러했듯,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그리운 고향, 완도. 그 바다와 하늘, 그리고 따스한 사람들. 나는 오늘도 그곳을 마음에 품고, 조용히 추억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