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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그늘 아래, 소모된 이름들

김왕식









통계의 그늘 아래, 소모된 이름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의 죽음은 통계다".
스탈린의 그 차가운 말은 역사의 어둠 속에서 여전히 메아리친다.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서도 그 말은 다시 살아난 듯하다. 이제 전쟁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숫자의 증감으로만 기록된다. 그리고 그 숫자 속에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북한군이 그 숫자 속으로 던져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총알받이가 되어버린 북한 병사들. 이들은 전장에 나섰지만, 승리의 영광도, 조국의 환영도 약속받지 못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적의 총구를 향해 몸을 던짐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인해전술이라는 오래된 전략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한 명이 쓰러지면 그 자리를 또 다른 이가 메우고, 그렇게 수많은 몸들이 총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조국의 영광인가, 아니면 잊힌 이름들인가.

전쟁은 언제나 약한 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작은 나라의 병사들은 선택권도 없이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나가 총알받이가 된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한 명이 쓰러질 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점으로 지도에 찍힐 뿐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형제였던 그들은 이제 숫자일 뿐이다. 통계에 기록되는 작은 수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전장을 설계한 자들인가, 총을 쥐여준 자들인가, 아니면 그들을 이용한 전략가들인가. 책임은 흐려지고, 죽음은 일상화된다. 뉴스 화면 속에서도 그들의 죽음은 몇 줄의 기사로 소모될 뿐이다. 전쟁의 참상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오직 전황의 유불리만이 화제가 된다. 그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갇히고, 죽은 자들은 말없이 땅에 묻힌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다. 전쟁 속에서 잊히는 인간의 존엄이다. 북한 병사들이 적의 총알을 맞으며 쓰러질 때, 그들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소중한 생명이었다. 전쟁은 그런 인간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다. 총알받이가 되어버린 그들의 삶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들이 쓰러진 그 자리에는 오직 전장의 먼지만이 남는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힘을 쥔 자들은 전략을 짜고, 약한 자들은 그 전략 속에서 희생된다. 인해전술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목숨들이 계획적으로 소모된다. 과거의 전쟁에서나 가능했던 그 비인간적인 방식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가.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묵인해야 하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총알받이가 되어 쓰러진 그 순간의 무게다. 이름도, 얼굴도 없는 병사들이 전장의 숫자로 기록되기 전에, 그들이 지녔던 삶의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가장 약한 자들에게 가장 깊다.

스탈린의 말처럼, 백만의 죽음은 통계일지 모른다. 그 통계 속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비극이 숨어 있다. 오늘도 전장 어딘가에서 쓰러지고 있는 이들의 죽음을 숫자가 아닌, 하나의 삶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하는 최소한의 자세이다. 전쟁의 그늘 아래 묻힌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ㅡ청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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