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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다리, 성장의 씨앗 ㅡ 평론의 새로운 지평

김왕식







공감의 다리, 성장의 씨앗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론다운 평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작품의 장단점을 나열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평론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공감과 이해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작품을 접할 때, 의도와 다른 해석을 마주하더라도 괜찮다. 작품 속에 담긴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고, 마음을 헤아려 줄 때 느껴지는 설렘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숨은 의도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이 평론의 시작이다. 평론은 단순한 분석과 평가의 작업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나기까지의 고뇌와 열정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평론을 쓰는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접근한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너의 평론은 지나치게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나는 날카롭고 객관적인 지적을 넘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한다.
이는 단순히 평론가로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평론이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수많은 고뇌와 자기 검열의 시간이 존재한다. 부족한 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를 뛰어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한계선에 멈추어 글을 완성한다. 그런 작품을 평론이라는 이름 아래 날카롭게 다루는 것은 작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긍정적으로 조명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평론의 과정은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독자가 함께 행복을 나누는 작업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때, 작가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단서를 발견하고, 독자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얻는다. 이러한 순간들을 목격하며 나는 평론다운 평론의 본질을 깨닫는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그 안에는 작가의 사유와 감정, 치열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평론가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날카로움과 객관성은 평론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작품의 진의를 가리거나 작가를 상처 입히는 도구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평론은 작가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평론다운 평론은 사랑과 공감에서 시작된다. 작품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가와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날카로움보다는 따뜻함이, 비판보다는 이해가 중심이 되는 평론은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작가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며, 독자들에게 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평론가는 작가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그 고민과 열정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평론은 작가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독자에게는 작품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게 하며, 평론가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작업이다.

평론다운 평론은 비판과 칭찬을 넘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작가에 대한 존중,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이 어우러지는 지점에 있다. 이러한 평론이야말로 작품을 살리고, 작가를 성장하게 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나는 그것을 평론다운 평론이라 부른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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