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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하얀 집, 신앙과 사랑의 길

김왕식









언덕 위의 하얀 집, 신앙과 사랑의 길



김왕식





언덕 위의 하얀 집.
그곳은 시간마저 천천히 흐른다.
정원에 핀 꽃들은 사계절의 빛깔을 품고, 창문 너머 서재의 책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속삭인다.
무엇보다도 이 집의 가장 빛나는 풍경은, 매주 주말 이곳을 찾는 부부의 모습이다. 그들은 마치 동화 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발걸음으로 이 집을 찾아든다.

김창남 선생. 그의 얼굴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1907년 평북 정주에 민족의 혼을 심기 위해 오산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 선생. 놀랍게도 두 사람은 외모뿐 아니라 내면까지 닮았다. 오산五山학교의 교정에서 그는 남강 선생이 가르친 정의와 강직함, 인격의 무게를 배웠다. 그 가르침은 김창남 선생의 삶에 깊이 새겨져, 지금도 그의 모든 행동과 말투, 심지어 미소 속에서도 잔잔히 배어난다.

그는 법원의 공직자다. 흔히 법원이라 하면 날카롭고 무겁기만 한 공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김 선생은 그곳에서 미소로 사람들을 맞는다. 단정한 태도와 친절한 말씨는 차가운 법정에도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해 조용한 선행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선행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그에게 선행은 남의 시선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만 피어나는 꽃이어야 했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온 지 20여 년. 신혼의 설렘은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말하지만, 그의 사랑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그리워한다. "보고 싶다"는 말이 그의 입에 습관처럼 맴돈다.
이 사랑은 한쪽만의 것이 아니다.

아내 역시 영주에서 법원 공무원으로 중책을 맡아 직무를 수행한다. 현모양처이자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리더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임당에 비유하며,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겸손한 태도를 칭송한다. 비록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그녀의 모습은 천상의 부부가 서로를 북돋우며 살아가는 사랑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단지 둘만의 것이 아니다. 두 아들은 부모의 신앙과 삶의 가르침을 따라 올곧은 삶을 살아가며, 부모와 함께 진정한 가정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간다.

그 때문에 부부는 주말마다 영주의 언덕 위, 하얀 집에서 만난다. 그 집은 이들의 사랑을 품고 숨을 쉰다. 문을 열면 봄에는 매화 향기가, 여름에는 바람의 소리가, 가을에는 낙엽의 속삭임이, 겨울에는 하얀 눈이 이들을 맞이한다. 서재에는 함께 읽은 책들이 꽂혀 있고, 정원은 두 사람의 손길로 가꾸어져 있다. 그곳에서 부부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서로를 위한 시간을 만든다.

주말의 쉼이 끝나면, 부부는 다시 서울로 향한다. 세검정 중앙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이들의 믿음을 단단히 묶어준다. 주일 아침의 고요한 기도 속에서 그들은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평화로 가득한 그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들의 삶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신뢰하고,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삶의 본질을 일깨운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한 사랑,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진심 어린 선행,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얀 집을 빛나게 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동화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화는 허상이 아니다. 신앙과 사랑이라는 단단한 뿌리가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하얀 집의 창문 너머로, 저녁 햇살이 스며든다. 부부가 나란히 정원에 앉아 있다.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 그저 "오늘도 참 좋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이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나는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김창남 선생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하얀 집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그들의 언덕 위 하얀 집. 그곳은 사랑과 신앙이 피어나는 작은 천국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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